사나사(舍那寺) 일주문
사나사(舍那寺)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민국 전통사찰 제48호이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923)에 고승인 대경대사(大鏡大師) 여엄(麗嚴)이 제자 융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다. 고려 공민왕 16년(1637)에 태고왕사 보우(太古王師 普愚)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檀越) 한방손(韓芳孫)이 재건하였다. 영조 51년(1773)에 양평군내 유지(有志)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堂山契)를 조직하고 향답(鄕沓)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량답(佛糧沓)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純宗)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 후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쳐 최근에는 1993년에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다.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제72호인 원증국사석종탑(圓證國師石鐘塔)과 도유형문화재 제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쟁의 흔적
사나사(舍那寺) 대적광전
사나사(舍那寺)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사나사 극락전
사나사 극락전 아미타불
사나사 삼성각
산신탱화
나반존자
칠성탱화
사나사 조사전
태고왕사 보우(太古王師 普愚)
사나사 원증국사탑(舍那寺圓證國師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이 탑(부도)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탑은 사나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인 태고화상 보우(1301∼1382)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국사는 13세에 회암사 광지선사에 의해 승려가 되었고, 충목왕 2년(1346) 원나라에 가서 청공의 법을 이어 받았다. 충목왕 4년(1348) 귀국하여 소설암이라는 암자에서 수도를 하고 왕사·국사가 되었으며, 이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탑의 기단(基壇)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돌종형태를 띠고 있다. 높직하고 네모진 기단 윗면에는 연꽃을 새겼고, 둥글고 길쭉한 탑신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가까이에 서 있는 탑비에 고려 우왕 9년(1383) 문인 달심이 이 탑과 탑비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출처:문화재청)
태고 보우(太古 普虛) : 승려. 일명 普虛, 성은 洪氏, 본관은 洪州, 호는 太古, 시호는 圓證, 탑호는 寶月昇空이다. 옥천면 대원리에서 문하시중 판이부상서 洪廷의 아들로 출생하여 1313년 13세에 출가하여 양주군 회암사 廣智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가지산 하총림에서 도를 닦았다.
1325년(충숙왕 12)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사하지 않고 1333년 용문산 상원암과 성서의 감로사에서 고행하였다. 1337(충숙왕 6) 겨울 송도 전단원에 머무르면서 ‘無’ 자를 탐구하여 깨달은 바가 있다. 1341년(충혜왕 2)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절을 짓고 태고사라고 하였다.
1346년(충목왕 2) 중국에 가서 湖州 霞霧山 淸珙의 법을 계승하여, 臨濟宗의 시조가 되었다. 1348년 귀국,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불도를 닦았다. 1352년(공민왕 1) 공민왕이 광명사에 원융부를 짓자 왕사가 되어 원융부에 머물다가 신돈의 횡포가 심해지자 소설사로 돌아갔다.
신돈이 죽은 뒤 국사가 되고, 우왕이 즉위하자 영원사에 있다가 1382년(우왕 8) 소설사로 돌아가 82세로 입적하였다. 화장 후에 舍利 100매를 얻어 양산사와 사나사와 청송사, 소설암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북한산에 ‘寶月昇空’의 탑비가 있다. 선교일체론을 주장,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고, 일정설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또 왕도의 누적된 폐단과 정치부패, 불교계의 타락 등에 대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저서로는 『太古和尙語錄』 2권과 『太古遺音』 6책이 있다. 2001년 설악면 소설암에서 양촌 권근이 지은 「미원현 소설산암 원증국사사리탑비명」 비편이 발견되었다. (출처 : 옥천면)
사나사 원증국사석종비(舍那寺圓證國師石鐘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사나사를 중창했던 고려 후기의 승려 원증국사 보우(1301∼1382)의 비이다. 보우의 호는 태고이며, 시호는 ‘원증’이고, 탑의 이름은 ‘보월승공’이다.
비는 고려말·조선초에 유행했더 양식으로, 받침돌 윗면에 비를 꽂아둘 네모난 홈을 파서 비몸을 세우고, 그 양 옆에 기둥을 대어 지붕돌을 얹었다. 비문은 파손되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려 우왕 12년(1386) 보우의 제자 달심이 세운 비로, 비문은 정도전이 짓고, 재림사의 주지인 의문이 글씨를 썼다.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신도들의 명단을 적었다(출처:문화재청)
양평 용천리삼층석탑(楊平龍川里三層石塔.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1호.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사나사)
사나사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머리장식을 갖추고 있다.
바닥돌 위에는 아래층 기단의 맨 윗돌로 보이는 부재가 놓여 있고, 위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을 다른 층에 비해 월등히 높게 만들어 놓아 독특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윗면에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위로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출처:문화재청)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사나사 계곡
위치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사나사 계곡
옛날 함씨족 마을 바위 구멍에서 튼튼하고 총명한 옥동자가 나왔다. 그들은 옥동자를 왕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성을 쌓았으나 후일 망하고 말았다. 어느 과객이 "어머니를 저렇게 버려두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구나!"했다. 그제야 함씨들은 선조인 왕이 태어난 바위를 밖에 두고 성을 쌓았음을 깨닫고 다시 성을 쌓았으나 또 다른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한다.
함왕혈(咸王穴)이 있는 계곡(스텐레스 관이 있는 곳)
사나사의 함씨각
사나사에는 함씨각이라 별도의 전각이 있다. 이는 함왕성의 성주였던 함규의 원찰이라는 설도 있다.
☆ 시조 함규(시호는 양후)의 고려의 통합삼한익찬 개국공신으로 광평시랑 평장사를 지내고 몽고군 침입시 대사마대장군을 지냈다.
그의 선조는 당나라에서 병부상서 평장사를 역임하고 우리나라에 귀화한 함혁이라고 한다. 함혁은 익화(양근)자사 재직시 선정을 베풀었고 그가 쌓은 석성의 둘레가 2만9천5십8자나 되었다고 한다 ☆
함왕성터(咸王城址)
함왕혈 부근에서 본 으아리(Clematis mandshurica RUPR.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성 식물. 201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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