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深源寺:심원사지深源寺址.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17-56 )
심원사(深源寺)는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가야산국립공원(伽倻山國立公園) 구역 내 백운동(白雲洞)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성주출신의 명사(名士)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기심원장로(寄深源長老)라는 시에서 '심원 옛 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라고 하였으니, 심원사는 고려말에도 옛절(古寺)로 불릴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사찰이었다.
조선 중종 때 지원(智遠) 스님이 중수하여 크고 화려하였으나 임진왜란에 소실된 후 중창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 되었다가 18세기 말경에 폐사(廢寺)되었다.
근래에 이루어진 발굴조사결과 심원사는 남북 약 80m, 동서100m 정도의 대지에 4단의 계단식 축대위에 삼금당지(三金堂址)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산지사찰(山地寺刹)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한편 최근 심원사는 크게 중창사업을 별여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 전각 10동을 건립하는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또한 심원사 경내에는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보물 제1647호), 경백전기법(유형문화재 제444호),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16호), 석조유물(문화재자료 제525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다수의 비지정문화재가 있다.(출처:성주군청)
심원사삼층석탑(深源寺三層石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1번지)
가야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원래 무너져 있던 것을, 1989년 새로이 복원해 놓은 것으로, 독특하게도 기단 아래의 땅 속에 사리장치(舍利裝置)를 마련해 두었다. (출처:문화재청)
이 석탑은 통일신라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인 심원사(深源寺)의 사지에 위치하고 있는 석탑으로 폐탑(廢塔)상태로 있던 것을 1990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원사는 가야산에 있었던 대사찰로 전하는 법수사(法水寺)와 같은 8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시에서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사세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승려 지원(智遠)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폐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은 외형상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중 기단 위에 쌓아 올린 삼층석탑으로 전체 높이가 450㎝, 지대석(地臺石)의 폭이 350㎝이다. 이중 기단은 장대석(長臺石)과 판석(板石)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은 각 층이 단석(單石)으로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두 개씩 모각(模刻)했다. 옥개석(屋蓋石) 역시 각 층이 단석이고 4단의 받침과 1단의 괴임을 모각했다. 상륜(相輪)은 완전히 없어지고 각 층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은 잘 남은 편이다.
최근 심원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사지(寺址)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사지의 최상단 남서편에 있던 석탑을 대웅전 전면으로 이건하였고, 현재 심원사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출처:성주군청)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星州 深源寺 石造遺物)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星州 深源寺 石造遺物.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5호. 경상북도 성주군 가야산식물원길 17-56 (수륜면, 심원사) )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은 중창공사의 진행 중에 발견 또는 발굴된 신라후기에 창건된 사찰인 심원사의 사지(寺址)에 남아 있던 여러 종류의 불교유물들로서, 석조불상대좌(石造佛像臺座), 배례석(拜禮石), 불상광배(佛像光背),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신방석(信枋石), 석탑기단갑석(石塔基壇甲石) 등이다.
석조유물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높이 47㎝, 어깨폭 40.5㎝, 최대폭 43.5㎝, 불상광배가 136.5×110㎝, 석조불상대좌가 73.2×17.4㎝, 석탑기단갑석이 101.8×102.2㎝, 신방석이 지름 74㎝, 높이 16.8㎝의 규모로 되어 있다.
심원사는 창건연대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시에서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오랜 역사 동안 번창한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승려 지원(智遠)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ꡔ범우고(梵宇攷)ꡕ에는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폐사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유물은 통일신라~고려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불상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주형광배(舟形光背)로 전체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겠으며, 향로 2좌를 배치한 예는 극히 드문 형식이다. (출처:문화재청)
대웅전
약사전
극락전
심원사 지장보살
2007년의 심원사
심원사라 부르지 않고 심원사지라 하는 것은 8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사찰이 지금은 현장에 없다는 뜻이다. 심원사는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 의병들의 실화로 말미암아 전소된 이후 다시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결국은 절터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론 지금 심원사지 현장에 가면 근래 신축한 사찰을 볼 수 있다.
수륜면 백운리 가야산 집단시설지구에서 심원골 등산로를 따라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이 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쌓아 올린 삼층석탑이다
이층기단은 장대석(長臺石)과 판석(板石)으로 구성되어 있고,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두 개씩 모각(模刻)했다.
삼층석탑의 탑신은 각 층이 단석(單石)으로 측면에 우주를 모각했으며, 옥개석 역시 각층이 단석이고 사단(四段)의 받침과 일단의 괴임을 모각했다
탑의 외형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사리장치(舍利裝置)는 기단아래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사리장치는 정교하게 치석(治石)된 판석으로 짜여진 입방체(立方體)의 석탑이며, 탑의 높이는 4.6m이다.
이 탑은 원래 폐탑(廢塔)이었으나 1989년 탑을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성주군청 자료에서)
심원사의 석물들(맷돌)
심원사의 석물들(맷돌)
심원사의 석물들(맷돌)
심원사의 석물들(주춧돌)
심원사의 파불의 광배(광배 뒷면에 보살상이 조각된 특이한 광배)
심원사의 파불의 광배(광배 뒷면에 보살상이 조각된 특이한 광배)
심원사의 파불의 광배(광배 뒷면에 보살상이 조각된 특이한 광배)
요사채
파불
파불의 광배
폐탑
우물의 석재
심원사의 범종
심원사 답사 중 가야산야생화식물원에서 본 애기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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