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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문경

문경 봉암사 극락전(聞慶 鳳巖寺 極樂殿)

노촌魯村 2016. 5. 14. 21:54


문경 봉암사 극락전(聞慶 鳳巖寺 極樂殿.보물  제1574호.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원북리))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시 원당으로 사용한 유서 깊은 건물로 전하고, 현재 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御筆閣)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옥개보수가 있은 듯 망와에 소화16년(1941년)이란 기록이 남아 있다.
봉암사에서 극락전은 가장 오래되고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전각이다. 그 형태나 위치로 보아 조선 중후기에 세워진 왕실 원당일 가능성이 높으며, 기단과 초석은 고려조의 것으로 볼 수 있다. 높은 단층 몸체에 차양칸을 둘러 마치 중층건물 같은 외관을 구성했고, 몸체와 채양칸의 기둥열을 다르게 한 독특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독특한 외관과 건축수법 및 단청에서 조선 중·후기의 건축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 문화재청)


이 건물은 879년(헌강왕 5)에 지증국사(智證國師)가 창건한 봉암사의 극락전이다. 935년(태조18) 정진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극락전과 일주문만 남기고 그 많던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중수공사가 있은 듯 망와에 소화(昭和) 16년(1941)이란 명문(銘文)이 남아있다.
기단은 탑과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상ㆍ하갑석은 면석으로 처리하였고 기단바닥은 장방형 판석을 깔았다. 그 위에 외진주12본과 내진주4본으로 중층목탑을 만들었다. 외진주를 기단 상대갑석 위에 3칸형식을 세워 초층지붕을 받게하고 사천주(四天柱)를 세워 정방형 불전을 만들었다. 전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배면벽에 기대어 작은 불단을 만들었다. 전면문은 주칸사이에 문설주를 세우고 3짝문을 내었다. 중앙의 문은 궁널을 끼운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고 좌우는 세살창을 다달았다. 따라서 정면에서 볼 때 4분합문으로 보이며 좌우측에는 폭이 넓은 세살문을 중앙에 넣고 졸대를 세운 판벽으로 처리하였다. 비록 단칸의 불전이지만 일반 불전과 마찬가지로 정면과 양측면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하층기둥 상부는 주두를 얹고 도리방향으로 주두하부를 건너 질러  첨차를 보내고 직각방향으로 뺄목을 교차시켜 이음부분의 허약함을 보강시켰고 하층추녀는 내진주가 고주인 관계로 기둥에 얹을 수 없어 내진주 밖으로 사압을 만들어 추녀 뒷뿌리를 받게 하였다. 2층은 다포작으로 주칸포는 2구씩 사면에 넣고 주심포는 모두 귀공포이다. 공포의 결구방식은 외2출목 내2출목으로 구성시키고 첨차는 취두형으로 하부는 원호를 그리게 하고 상부는 소로없이 수평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살미는 앙서형으로 힘이 있으며 단부는 사절시키고 내부쪽으로는 취두형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내출목 상단에 장혀를 올리고 상벽을 구성한 후 외진으로 17개의 우물을 돌리고 중앙에 공포를 찾아 만든 감입천장으로 장식하여 궁전천정을 연상케하고 있다. 이러한 천정구성은 덕수궁(德壽宮) 중화전(中和殿),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 등에서 볼 수 있다.(출처 : 문경시청)










청련화 빛나고 백련화 활짝 피니

사색의 찬란한 빛이 전각을 비추도다.

몸에 맞는 보배 옷이 생각 따라 나타나고

소반 가득한 진미가 때에 맞게 생겨나네.

 

공중에선 밤낮으로 하늘꽃비 내려오고

귓가엔 수시로 설법가락 울렸어라

부처님 찬탄하시는 소리 진실로 간절하니

중생들 어찌하여 귀의하지 않으리.


백암 성총(栢庵 性聰) :1631~1700년, 남원이 고향,정토보서 등을 저술한 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