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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문경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碑) 및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

노촌魯村 2016. 5. 15. 04:40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碑.보물  제172호.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1-2번지 봉암사)

봉암사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전기의 탑비로 봉암사를 중흥한 정진대사의 것이다.
정진대사(878∼956)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로, 효공왕 4년(900)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고 경애왕 1년(924)에 돌아와 신라 경명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고려 태조 18년(935)에는 봉암사를 두번째로 크게 짓고,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특히 고려 전기의 태조·혜종·정종을 선문(禪門)에 들게 한 장본인으로,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왕은 ‘정진’이라는 시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이 두드러지게 커 보인다. 꼭대기에는 불꽃무늬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우뚝 솟아있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화되었으며 조각 기법이 퇴화하였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몽유가 짓고, 명필 장단열이 글씨를 썼다. (출처;문화재청)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보물  제171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산1-1번지 봉암사)

봉암사에 있는 정진대사 긍양의 사리탑으로, 경내에서 벗어나 사찰 입구 북쪽 산중턱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 경승지를 택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진대사(878∼956)는 통일신라 효공왕 원년(897)에 개초사에서 수도한 후, 효공왕 3년(899)에 당에 다녀왔다가 경애왕 원년(924)에 귀속하여, 백암사를 거쳐 봉암사에 와서 이 절을 크게 번영시켰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는 이 탑은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 곳곳에 꽃무늬조각과 구름·용·연꽃무늬 등의 불교 세계를 상징하는 각종 장식을 화려하게 두었다. 탑신의 높직한 8각 몸돌은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조각이 있고, 앞쪽면에 자물쇠 모양의 조각이 있을 뿐, 다른 7면은 조각이 없다. 지붕돌은 지나치게 두꺼워 둔중한 느낌을 주며,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의 머리장식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진 탑으로, 양식상 절 안에 남아있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을 모방하고 있으나 기본구성과 비례감, 조각수법 등이 다소 떨어진다. (출처:문화재청)


이 탑은 나말려초의 고승인 정진대사 긍양(兢讓, 878∼956)의 사리탑으로, 고려 초기인 956년과 965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5m이다. 현재 부도는 봉암사 경내에서 벗어나 사찰 입구 북쪽 산 중턱 가까운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지대석부터 옥개석ㆍ상륜부에 이르기까지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한 팔각원당형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다.
지대석 상면에 낮은 각형, 높은 원호, 낮은 각형으로 마련된 3단 굄이 기단부를 받고 있는데, 기단은 통식대로 상대석ㆍ중대석ㆍ하대석으로 이루어졌다. 하대석은 2단으로, 높은 하단의 각 면에는 1구씩의 안상이 조각되고 그 안에는 화형(花形)이 장식되었다. 상단에는 부연이 있는 갑석이 덮여 있다. 상면에는 운문(雲文)이 조각된 굄대가 있어 그 위의 상단을 받고 있다. 상단 면석의 각 모서리에는 거의 원각에 가까운 원주형을 모각하고 그 표면에 운문을 장식하였다. 각 면에는 운문과 쌍룡문을 조각하였으며 상단에는 역시 8각의 갑석을 덮었다. 중대석은 팔각의 각 면에 안상 1구씩을 조각하였는데, 상하의 좌우에서 안으로 뻗은 화형이 강조된 특이한 형태이다.

안상 내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앞면 1면에만 탁상의 사리합과 보개ㆍ보산ㆍ보주를 조각하였는데, 다른 7면에는 아무 조식(彫飾)이 없어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상대석은 하면에 2단의 받침이 각출되었으며, 그 위에 복엽으로 16판의 앙련(仰蓮)이 조각되었다. 이 상단에는 두툼한 갑석형 판석을 덮고, 그 상면에 높은 2단의 옥신굄대를 마련하였는데 상대갑석의 윗면에 3단의 낮은 굄을 조출하여 이를 받고 있다. 하단이나 상단 굄대의 각 모서리에는 난간을 돌리고 또한 각 면석에는 단주를 세웠는데, 하단은 1주씩이나 상단은 2주씩 배치하였다.
옥신석은 각 면에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앞면에는 문호형과 자물쇠가 조각되었으나 다른 7면은 우주뿐으로 기단부 중대석과 같이 조식이 생략되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의 받침이 각출되어 있고 이어 각형의 부연이 가늘게 조각되었다. 옥개석의 각 모서리 전각부에 이르면서 상향과 반전이 심한데 전각에는 귀꽃의 조각이 없다. 낙수면은 정상에서 약간 급한 듯하나 차차 평박해졌으며 기왓골의 표시는 없고 굵직한 우동만이 표현되었다. 옥개석 정상부에는 각 우동부에 1판씩 8판의 복련을 돌리고 상륜부를 받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부재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데, 8판의 입상형 앙련(立狀形 仰蓮)이 화사하게 조식된 앙화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보륜하나가 남아있다.
이 부도는 지증대사적조탑의 각부를 많이 모방하였는데, 같은 지역 내에 유존하는 앞시대 작품의 모든 양식과 수법을 따르는 일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기본구성이나 조식에 있어서 지증대사적조탑에 비하여 간략화의 경향이 보일 뿐만 아니라, 각부 비례에 있어서도 높이에 비하여 너비가 좁아 고준한 느낌을 주며, 두꺼운 옥개는 둔중한 감을 주고있어 시대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출처 : 문경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