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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 (忠州 烏岬寺址 石造如來坐像)

노촌魯村 2016. 7. 4. 00:30



충주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 (忠州 烏岬寺址 石造如來坐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충주시 앙성면 모점1길 404 (모점리))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오갑사 절터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얼굴의 일부와 머리가 떨어져 나갔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부드러운 얼굴은 인간적인 모습을 나타내지만 짧은 목, 상체에 비해 큰 하체, 두꺼운 옷속에 감추어진 신체 등 다소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통일신라의 사실주의 조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옛 양식을 수용한 면이 엿보인다.
이 절터에서 금나라 연호인 명창(明昌)과 오갑사(烏岬寺)가 쓰여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 불상이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고려중기시대의 석불로 추정되며 기법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있어 우수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불상은 불신상대 중대 하대의4석으로 조성되었는데 두정의 육계와 상호에 약간씩의 마모와 수인이 절단된 것을 제외하면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상대석의 앙연좌와 의문의 처리 형태나 하대의 복연좌 등이 매우 수려함을 보이고 있다.
백호공 미안 비량 구진 등의 형태가 원만하고 법의는 우견편조인데 옷주름은 양 어깨를 덮고 전면에서 무릎 밑으로 흘러 양 무릎 사이에서 겹겹의 주름을 조형하였다. 석조불상의 코 부분이 떨어져 전래되어 온 이야기가 있는데 석불의 코 부분을 떼어 물에 타 미시면 소원성취가 된다고 하여 코가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불상이 있는 앞 밭에서는 명창(고려 명종 22년:1192) 3년이라 새겨진 기와와 오갑사라 쓰여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 부분에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출처:충주시청)










충주 오갑사지(忠州 烏岬寺址) 축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