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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忠州 丹湖寺 鐵造如來坐像).충주 단호사 삼층석탑(忠州 丹湖寺 三層石塔)

노촌魯村 2016. 8. 4. 07:22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忠州 丹湖寺 鐵造如來坐像.보물 제512호.충북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호사 (단월동))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忠州 丹湖寺 鐵造如來坐像)은 단호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이다. 단호사는 창건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머리 가운데에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반달 모양을 표현하였다. 긴 타원형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단아하게 묘사되었으며 두 귀는 길게 표현되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다소 두꺼운 편이고 옷주름은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슴에 묘사된 띠매듭은 고려말 조선초부터 나타나는 수평적인 처리에 근접하고 있다. 좁고 둥근 어깨와 평평한 가슴의 상체는 4각형의 각진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얹어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며 무릎에 표현된 평행한 주름은 상당히 형식적이다.
얼굴부분의 세부 표현기법과 머리에 나타난 반달 모양 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도식적이고 특이한 옷주름 처리, 각진 상체 표현 등 지방색이 더해진 작품이다(출처:문화재청)

현재 단호사 법당의 주존불로봉안 되어 있는데 이곳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고 단호사의 현 주지가 1945년에 이자리에 불상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을 이룩한 점으로 단호사철불은 원래 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원체 짙게 개금불사되어 오랫동안 철불인지 모른 채 지내오다가 1968년도에 철불로 밝혀졌다. 나발의 머리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양 미간의 백호공에는 새로 만들어 끼운 백호가 있으며 두 눈과 코, 입술등이 정제되고 균형잡혀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지고 목에는 삼도가 돌려져서 위엄이 있어 보이며 상호가 원만하여 더 한층 근엄한 인상을 준다. 통견한 법의는 배꼽 앞에서 유려한 활 모양의 원을 그리면서 양쪽 팔에 걸쳤으며 양쪽 어깨에서 넘겨진 의문은 뒷면에까지도 조식되었고 가슴에는 의대와 그 밑으로 군의의 결대가 보인다.
양쪽 무릎에 의문이 조각 되었고 그 위에 양쪽 발바닥이 노출되었으며 양 무릎 가운데에 산형의 앞자락이 펼쳐졌는데 그 조각은 단정하다. 수인은 양쪽 손가락 부분이 모두 파손되어 있던 것을 근래에 원형복원하였다. 이 철불은 육계와 상호 그리고 양쪽 무릎 의문 등 각부의 양식 및 조성수법으로 보아 그리고 특히 주조 자료가 철이라는 점이 대원사에 봉안되어 있는『충주철불좌상 (보물98호)』과 흡사하여 양 불상은 동시에 주조되었거나 한사람에 의해 조성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동체에 비하여 무릎이 넓직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어 균형잡힌 조성이다.
상호가 원만하나 전대에서 볼 수 있는 허심탄회한 부처님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표정으로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변화라고 보겠다. 제작년대는 11세기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 불상은『충주철불좌상』과 함께 고려시대 철불의 중요한 유품이며 유사한 양식을 갖춘 2구의 철불이 이 지역에 전하는 점은 고려시대 철불조성에 있어 지방적 양식이 잘 표현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출처:충주시청)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忠州 丹湖寺 三層石塔.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충북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월동))

단호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한 석탑으로,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이며, 1층 기단(基壇) 위에 탑신부(塔身部)가 놓여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일부가 약간 부서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직하며, 4층 몸돌의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5층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놓여 있는 것에 비해, 이 탑은 평지에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충실히 갖춘 안정감이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단호사 약사전 앞에 위치하는 이탑은 단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건립한 일반형의 3층석탑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정밀조사를 한결과 원래는 5층 석탑 이었으리라는 짐작을 갖게 한다.지금까지는 이 탑을 3층으로 보고 3층 옥개 위에는 노 반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노반이 아니라 3층 옥개에서 각 출면에 우주 가 정연하게 각출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었다.
원 위치였을 이 탑은 기단면석에 조출된 우주와 탱주의 표현 수법이 일정하지 않으며 초층 잡신이 별석인데 비해 초층 옥개와 2층 탑신 2층 옥개와 3층 탑신이 한개의 돌로 되었고 3층 옥개 위에 4층 탑신이 각출되었다.
각층 탑신에는 우주의 표현이 정연하며 4층 탑신이 있음을 볼때 원래 5층탑으로 추정 되며 이탑의 체감비율로 볼 때 상당히 경쾌한 탑신부를 형성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탑은 기단부가 갖는 혼돈한 자태와 탑신과 옥개가 1석으로 된 점 등은 석탑 구성에 있어 후대의 양식에서 오는 수법이란 점을 볼 때 탑을 만든 시기는 고려중기 이후가 될 것으로 짐작되며 충주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위치하나 이 탑은 평지에 조성되었고 그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탑으로서 가치가 있다. (출처:충주시청)


단호사 약사전



단호사 용트림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