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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덕

도해단(蹈海壇)

노촌魯村 2016. 9. 20. 21:17


도해단(蹈海壇.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278-1)

김도현(金道鉉.1852(철종 3)∼1914.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김령(金寧). 별명은 도현(燾鉉), 자는 명옥(鳴玉), 호는 벽산(碧山). 철종 임자년(1852) 7월 14일 영양 소청리에서 태어났다.  성하(性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을미사변 때 사재를 기울여 무기를 마련하고 의병을 모아 안동, 함창, 예안, 관동 등지에서 적과 싸우다 고종황제의 조서가 내려와 해산했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정미년(1907) 2월 체포돼 대구감옥에 투옥됐다 풀려나 기유년(1909)에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한일합방이 된 후, 일본의 백성이 될 수 없다며 순국을 결심했으나 부친이 생존해 있어 결행하지 못하다 갑인년(1914) 8월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63세 때인 11월 7일 영해면 대진리 산수암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  

蹈海(도해)라는 말은 '진나라가 천하를 차지한다면 바다를 밟고 들어가 죽겠다'저항했던 중국 제나라 노중련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영해에 실제로 목숨을 던져 절의를 지킨 인물이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 의병장이다.

벽산은 영양을 떠나 영해 울티(泣峙)를 넘고 산수암(汕水巖)에 이르어 미리 써 놓은 임절시(臨節詩), 곧 ‘죽음에 임하여 쓴 시’를 남기고 지팡이를 짚으며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1973년 그가 순국한 산수암에는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다. 해마다 벽산의 생일인 음력 7월 14일 ‘도해단 전례’가 이곳에서 열린다.

산수암(汕水巖) 절명시(絶命詩)


我生五百末 赤血滿空腸   

오백년 말에 태어나 붉은피

빈 가슴속에 가득하네.

中間十九載 鬚髮老秋霜   

중년의 19년동안 머리카락만

늙어 가을서리 내린 듯 하네

國亡漏未己 親沒心更傷   

나라가 망함에 눈물은 하염없으며

어버이 여의니 마음 또한 아파라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홀로 선 옛 산은 푸른데

온갖 계책 헤아려도 아무른 방책이 없네.

萬里欲觀海 七日當復陽   

만리길에 바다를 보고자 하니

이례가 마침 동짓날이라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희디힌 저 천리길 물속 내 한 몸

넉넉히 간직할 만 하여라  

 



1971.9월에 박정희대통령께서  천추대의(天秋大義 길이길이 오랫도록 남을 큰 뜻)라는 휘호와 금 일백만원을 하사하여 건립한 시설물이다.


산수암(汕水巖)


 



비각 건립 전 모습





도해단(蹈海壇) 앞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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