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화상은 20살에 친구가 죽자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품고 집을 떠난다. 그는 집을 떠나올 때 반송 소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나왔다는데 정자가 선 자리에 지팡이를 꽂고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어머니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저는 살아 있을 것이고 죽으면 저는 죽은 것으로 아십시오."
나무는 잘 자라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높이가 수십 척이 됐고 너비가 몇아름이나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나옹이 큰 스님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반송정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를 반송정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겪은 뒤 1965년 고사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세운 정자가 지금의 반송정이다.
반송정에서 본 창수면 신기리
신기(新基)리 :신기리 동명의 유래는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 새술막 또는 신기라 하였다. 본래는 영해군(寧海郡)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정동(雨井洞)을 병합하여 신기동이라 해서 영덕군 창수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신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행정구역상 신기1,2리로 분동되어 있다. 신기리의 위치는 동은 인량리, 서는 신리, 남은 영해면 묘곡리, 북은 가산리와 이웃하고 있다.
*가나무지(柯木亭) : 새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가죽나무가 많았다 함.
*반송정(盤松亭) : 새술막 동쪽에 있는 마을로 반송나무가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말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출가(出家) 할 때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 한다.
*배나리(舟津) : 반송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함.
*우장골(위장골, 雨井洞, 葦長谷) : 새술막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위정사(葦井寺)가 있었다 함.
*중간마 : 신기 북쪽에 있는 마을임.
*학교옆 : 새술막 남동쪽에 1936년에 신축된 초등학교가 있는 옆 마을임. (출처:영덕군청)
나옹선사는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미골(일명 佛岩골)에서 태어났다. 선사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죽음’에 대해 묻고 다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답을 얻지 못했고, 생각할수록 인생은 그저 무상할 뿐이었다. 마침내 선사는 스무 살 때 문경 사불산 대승사 묘적암으로 출가했다. 고향을 떠나면서 자신의 반송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가 자라면 내가 살아있는 것이고,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아시오.”
그런데 신기하게 지팡이에 움이 돋아났고, 반송은 600년도 넘게 이곳을 지키다가 1965년경 고사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반송이 살아있을 때는 당제를 지내고, 죽어서도 고사목에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시 반송을 심고 정자도 짓고 시비도 세웠다. 시비에는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애송하는 나옹 스님의 시가 새겨져 있다.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 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반송유적지 인근에 나옹선사의 출생설화가 깃들어있는 ‘까치소’가 있다.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듯하지만 흥미롭다. 영해부(寧海府)에 사는 한 여인이 금빛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알 하나를 품에 떨어뜨리고 가는 꿈을 꿨다. 그런 다음 아이를 가졌다. 만삭이 되어 해산날이 다가왔는데 공교롭게도 관아에 끌려가게 되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세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끌려가던 도중에 그만 냇가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럼에도 무도한 관원들은 아이는 버려두고 그 어미만을 끌고 갔다. 피범벅이 치마를 입은 여인이 끌려오자 부사가 연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부사는 관원들을 크게 꾸짖고 미역과 쌀을 주며 여인을 돌려보냈다. 여인은 허겁지겁 아기가 버려진 냇가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백 마리 까치가 아기를 덮어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기가 바로 나옹선사이고, 여인은 선사의 어머니 정씨였다. 이후 사람들은 그곳을 까치소라고 불렀다.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 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애니메이션 출처 : 영덕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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