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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면앙정(俛仰亭)

노촌魯村 2017. 4. 9. 09:05



면앙정(仰亭.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전남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제월리))

면앙정은 중종 28년(1533)에 면앙정 송순(1493∼1582)선생이 관직을 떠나 선비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로, 퇴계 이황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학문에 대해 토론하던 곳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송순 선생은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말년에는 학문에 전념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처음 있던 정자는 선조 30년(1597)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어, 효종 5년(1654)에 후손들이 다시 지었다.
정자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면앙정은 간소한 양식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커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1972년 8월 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1533년(중종 28) 송순(宋純:1493~1583)이 건립하였는데, 이황(李滉:1501~1570)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이다.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있는데, “내려다보면 땅이, 우러러보면 하늘이,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풍월산천 속에서 한백년 살고자 한다”는 곳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다.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며,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였다. 최초의 모습은 초라한 초정으로 바람과 비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많은 학자·가객·시인들의 창작 산실을 만들었다. 정자 안에는 이황·김인후·임제·임억령 등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다시말해 이곳은 송순의 시문활동의 근거지이며, 당대 시인들의 교류로 호남제일의 가단을 이루었던 곳이다. (출처 : 담양군청)

송순(宋純,1493-1583)은 조선의 문신. 본관은 신평, 자는 수초, 호는 면앙이다. 전남 담양 출신.






면앙정(仰亭)에서 본 풍경

 

 



<면앙정가> 중


너른 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얹혔으니

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벌린 듯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린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펴진 듯이

넓거든 길지 말지, 푸르거든 희지나 말지

바회 우 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 안쳐시니

구름 靑鶴(청학)千里(천 리)를 가리라

릐 버렷.玉泉山(옥천산) 龍泉山(용천산)린 믈히

亭子(정자) 압 너븐 들 兀兀(올올)히 펴진 드시

거든 기노라 프료거든 희지마니















면앙정에 있는 수령 200년 정도된 참나무(보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