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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

노촌魯村 2017. 6. 17. 20:07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보물  제1293호.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산8번지)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대문간채 뒤 현판 : 樂隱齋

낙은재(樂隱齋)' 왼쪽 귀퉁이의 石坡宮(석파궁) 이라 새겨져 있다. 석파石坡는 흥선대원군 李昰應(이하응)의 호로써 이 글씨의 주인공이다.

 20111218KBS ‘진품명품에서 낙은재에 대해서 방송을 했는데 아끼던 신하가 시골로 낙향을 할 때 써준 것으로 사본이라한다.


    


공주 계룡산 중악단은 대문간채, 중문채, 본전이 일직선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주위는 담으로 둘러져 있다. 대문과 중문 사이에 앞마당이 있고, 본전[중악단] 앞에 중정(中庭)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중문채와 본전 사이에 돌과 벽돌을 깔아 신도(神道)를 조성하였다. 중악단의 본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평면적 46㎡]이며,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으로서, 다포 팔작집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통해 건물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내부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셨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악단(中嶽壇)현판 :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 글씨

 

 

계룡산 중악단은 주형장 초석 위에 원형 기둥으로 세워진 다포 양식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소슬 삼문에 좌우로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보물 제1293호로 등재된 조선 말기의 건축물이다. 지붕 위에 12지 신상이 조각되어 있고 정문 중문 등 조선시대 궁궐 형태를 그대로 축소시켜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 천장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 공포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 측면

 


신원사(新元寺)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651년(의자왕 11)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 보덕(普德)이 창건하였다. 940년(태조 23)에 도선국사가 법당만 남아있던 것을 중창하였다. 1298년(충렬왕 24)에는 무기(無寄)가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에 무학(無學)이 중창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지었고, 1866년(고종 3)에 관찰사 심상훈(沈相薰)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 하였으며, 1876년에 보연(普延)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하며, 신원사 대웅전·향각(香閣)·영원전·대방(大方)·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소림원, 금룡암, 보광원, 고왕암, 등운암 등이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또 향각의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한다. 신원사 대웅전은 1876년(고종 24) 보련 화상에 의하여 중건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미타여래를 주존불로 좌보처 관세음보살, 우보처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독성각

나반존자

칠성탱화

영원전(靈源殿:명부전)



 

 

비로전 내부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

  

신원사오층석탑(新元寺五層石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충남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양화리))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신원사노사나불괘불탱(新元寺盧舍那佛掛佛幀.국보  제299호.충남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신원사 (양화리))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18m, 폭 6.88m 크기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하여 옷을 표현하였고, 5가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주변 배경을 표현하였다. 중심 불상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물건과 두광이나 옷색의 차이 등을 이용해 10대보살들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 위의 10대제자들은 서로 다른 얼굴 방향과 표정, 각기 다른 옷과 물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모습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제작된 이 괘불은 짜임새있는 구도, 섬세한 표현, 밝게 표현된 색조 등이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문화재청)

중악단에서 본 계룡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