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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표충사목조관음보살좌상(表忠寺 木造觀音菩薩坐像).표충사석조보살좌상(表忠寺石造菩薩坐像).표충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表忠寺 石造地藏菩薩半跏像)

노촌魯村 2017. 7. 29. 20:14


표충사목조관음보살좌상(表忠寺 木造觀音菩薩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0호.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표충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박물관 입구 정면에 있는 단독 유리 진열장내 8각의 목조 대좌위에 봉안되어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진중(陣中)에서 원불(願佛)로 모시기도 했고, 강화사(講和使, 정식 직함은 回答兼刷還使)로 일본에 갔을때도 모시고 갔다고 전한다. 그러나 불상의 어깨와 다리가 이루는 비례가 좋아 자세에 안정감은 있지만 불상의 뒷면 등 가운데에 가로 11cm, 세로 12cm 정도의 복장공과, 저부 좌대 가운데에도 원형의 복장공이 있고,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편삼과 그 위에 대의를 입어 오른쪽 어깨를 살짝 걸쳐 내리는 변형통견식으로 착의 하였고, 배 앞에는 대의 밖으로 형식적인 편삼자락이 흘러내려 있는 등 일반적인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어서 임진왜란을 전후로 사명대사가 원불로 모셨을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하겠다.
좌상의 수인은 아미타인(阿彌陀印)인데, 길고 통통한 양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위에 살짝 들었다. 왼쪽 손바닥 위에는 정병이 올려져 있으며 정병은 동체부가 길고 기대가 있으며, 좌우에 수구부와 손잡이가 달린 특이한 형태이다. 흔히 “라마식 정병”이라고 하는 주전자형 정병으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수구부가 짧고 동체부에 손잡이가 없는 정병과는 차이가 있으며, 고려후기 “라마식 불상”이 들어오면서 유입되어 15세기 이후 유행하는 외래적 요소이기도 하다.
머리에는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은 2겹의 동판으로 앞쪽 관대와 뒤쪽 관대를 따로 만들어 이를 철심으로 연결시켰으며, 정면에는 동판으로 따로 만든 화염문과 운문을 보관판에 구멍을 내고 철심으로 고정하였다. 귀의 양측으로 달린 수식은 가장자리와 내부에 바늘과 같은 뾰쪽한 도구로 찍은 점열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관아래 머리카락은 가운데로부터 측면까지 가닥을 나누어 그 내부에 모발을 새겼으며, 뒷면에는 가닥을 나누지 않고 빗으로 그은 듯한 모발이 표현되어 있다. 귀의 앞뒤로 각각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내려와 어깨에서 고리모양을 이루었다. 다시 어깨측면과 가슴 쪽으로 두 가닥이 흘러내린다.
얼굴은 방형으로 양 뺨이 통통하며, 이마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눈썹과 눈, 그리고 눈썹에서 코롤 이어지는 코와 입가의 미소 등 적절한 균형과 조화는 조용하고 선정에 든 듯 불안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으며,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가부좌한 양다리는 오른 발이 드러나며 다리를 덮은 군의는 다리의 윤곽선을 드러내며 사실감 있게 표현 되었다. 군의의 끝단은 발목에서 한번 접어 내려 다시 양측으로 하나의 큰 주름을 이루면서 양측으로 정리되었다. 왼쪽 무릎 위에는 소매 자락이 길쭉하게 흘러내려 있는데, 주름은 딱딱하고 도식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예배대상으로서의 불격은 물론 신비감마져 드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 불상이다.(출처:밀양시청)



표충사석조보살좌상(表忠寺石造菩薩坐像.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7호.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이 보살상은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보편적인 특성을 띠면서도 얼굴 등에서는 그 개성이 드러난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조형성은 재료에서 오는 기술적, 시대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은 물론 세부적으로 옷주름이 더욱 딱딱하고 형식화되는 18세기전반 이후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현재 조선후기 석조 불상들의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8세기는 17세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19세기와 근대를 있는 시대로서 중요하며 이와 같은 불상을 통해 시대적인 변화와 양식적인 변화의 추이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표충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表忠寺 石造地藏菩薩半跏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1호.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표충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팔굼치, 무릎 측면으로 도금이 조금식 떨어져 나갔으나 이를 제외하면 상태는 양호하다. 유리제 구슬 6과와 오곡약재의 일부, 경전인쇄물 3장, 불상발원문의 일부, 감색.분홍.녹색.보라색 천, 오색실의 일부가 속에서 나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장보살의 복장(腹藏)에는 그 외에도 중수기와 개금불상기도 있었다고 하는데, 중수기(重修記)에는 “건융무오십이월일 표충사 중수지장일위(乾隆戊午十二月日 表忠祠 重修地藏一位) 즉, 1796년에 개금불사를 했다는 내용을 알 수 있었고, 현재는 도난사고로 인해 모든 복장유물이 흩어져 이 내용 이외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보살상은 저부좌대 보다 높은 자리에 허리를 세우고 어깨와 머리는 약간 숙인채 오른쪽 다리를 올려 왼쪽 다리에 두는 반가자세를 취했으며, 양손은 나란히 무릎위에 두었다. 다리에 비해 상반신이 긴 편이며,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것은 조선후기 불상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랐다. 방형의 얼굴에 민머리로 이마선의 경계로부터 머리는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사선으로 올라간 눈과 눈썹에서 이어지는 오똑한 코, 좁은 인중과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젊고 밝은 인상을 준다. 어깨에 숄 처럼 걸친 천의는 목덜미에서 3단으로 접었으며, 겨드랑이로 빼낸 양 자락을 다시 팔꿈치로 빼내어 손목 위로 넘겨 내렸다. 특히 겨드랑이로 빼낸 천의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듯 표현되었는데 이와같은 표현법은 법주사(法住寺) 관음전 불상이나 양산 통도사(通度寺) 관음전 불상, 부산 범어사(梵魚寺) 불상 등 주로 단독관음상(單獨觀音像)에 주로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가슴아래에는 군의와 비늘모양의 장식이 있는 짧은 요의 같은 것을 이중으로 입고 띠로 묶어 띠 자락을 가지런히 내렸으며 다리를 덮은 군의는 날카로운 듯한 파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본 작품은 아무런 손상 없이 완형으로 박물관내에 소장되어 있는데 복장물이 흩어져 없어졌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그나마 1738년 불상중수기와 1796년 불사개금기의 기록 일부가 남아 있어 석조지장반가상은 적어도 18세기 전반이전에는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양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표충사 지장보살반가상은 바람에 날리는 듯한 천의 자락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데 반해 이와같은 형태로서 연대가 이른 1666년 보은 법주사 관음상과 비교하면 천의 자락이 힘이 있으면서 유려하여 시기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같은 천의 형식은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법주사 관음전 불상을 기준으로 그 상한선이 17세기 중반 이전으로는 올라갈 수 없을 것이며, 하한 역시 1738년 이하로 내려갈 수 없어 본 작품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밀양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