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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제일교회(大邱第一敎會.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노촌魯村 2021. 10. 8. 16:11

대구제일교회(大邱第一敎會.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 중구 남성로 23 (남성로))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이다.

고종 32년(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37년 초 이주열 권사에 의해 높이 33m의 종탑이 세워졌고, 1969년에 내부공사를 하고 1981년에 건물 뒤에 156평의 성전을 늘렸다.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의 수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1936년 이주열李主悦 권사에 의해 높이 33m의 종탑이 세워졌다.

1936년 이주열李主悦 권사가 수성들에 있던 논을 팔아 희사한 헌금과 교인들의 특별헌금으로 예배당의 정면 우측부에 벽돌조 5층(높이 33m), 연 13평(약 42㎡)의 종탑을 세워 현재의 대구 중구 남성로 제일교회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목사 안의와安義窩 선교기념비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의와安義窩(James E. Adams:제임스 아담스)’ 선교사는 1867년 5월 2일 미국 인디애나(Indiana)주 맥코이(McCoy)에서 태어나, 1888년 캔자스(Kansas)주 토피카(Topeka)의 워시번 대학(Washburn College)을 졸업하였다. 그후 1년간 존 홉킨스 대학(John Hopkins University)에서 수학하고 맥코믹(McCormick) 신학교에 들어가 1894년 졸업하였다.

1895년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받고 그해 5월 부산에 도착했다. 이듬해 1896년 11월 대구선교 업무를 인계 받은 안의와 선교사는 1897년 대구 부임과 동시에 대구·경북 모교회인 남문안 교회(현 대구제일교회)를 설립했다.

1923년 병으로 대구를 떠날 때까지 경북 곳곳에서 선교활동을 펴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계성학교(啓聖學校)를 비롯하여 많은 학교를 세워 교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안의와 선교사는 1924년 건강 악화로 23년간 보낸 이국땅을 뒤로 하고 영구 귀국한 후, 1929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 리버모어에서 62세를 일기로 소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