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남구 비슬산 은적사(隱跡寺)
은적사(隱跡寺)는 서기 926년 신라 경애왕 3년에 창건된 절로서 은적사란 이름이 생기게 된 연유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신라말 후삼국 때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 경애왕이 고려 왕건에 구원을 요청했다.
구원병과 대구에 온 왕건은 팔공산 동화사 방면으로 가다 산기슭에서 견훤의 군대에 포위를 당해 전멸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때 신숭겸의 계책으로 탈출한 왕건은 현재 은적사 대웅전 우측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자연동굴에 숨었다. 이 굴에서 3일간 머물고 현재 안일사와 임휴사에서 쉰 왕건은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철원으로 회군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3일간 숨어있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그 굴이 있는 곳에다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 명해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은적사라는 절을 짓게 했다. 이것이 은적사가 생긴 연유이다.
천년 고찰인 은적사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들어서 있으며 차고 깨끗한 약수가 있어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또 현재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불교 홍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출처 : 은적사)
창건연혁 : 비슬산 은적사는 신라 55대 경애왕 3년(서기926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천년고찰로써 대구지역 불자들의 정신적인 귀의와 기도처로 유명하다.
후삼국시대 말 후백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왕건 에게 청병하였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현 대구)에 입성하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비슬산으로 피신하여 이곳 은적굴에 3일간 숨어 지냈다. 마침 3일간 짙은 농무로 굴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굴의 입구는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한 왕건은 훗날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강원도 철원으로 회군하였다. 그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이곳에 사찰을 건립하고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진 곳이라하여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명하였다.
그후 조선 이조 4년(서기1644년) 취감스님께서 재창하고 1947년 해응스님과 1978년 종원스님이 중건중수하였으며, 1981. 1월에 장윤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심어주고자 1982. 2월에 은적사 부설 룸비니유치원을 설립하였고 1985년 사요스님이 유치원 확장공사를 1992. 3월로 3학급이던 유치원을 7학급으로 늘렸고, 요사채와 후원채를 중건하고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94년 법민스님이 도량정비사업과 컴퓨터 행정업무를 일신하여 정보화에 주력하였으며, 1998년 회룡스님, 2003년 허운스님과 2006년 ∼ 2014년 허주스님께서 전주지 스님들의 유지를 받들어 청소년 선도와 어린이 포교에 매진하였다.
2014년 12월에 원일스님이 부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많은 불자들의 소원을 성취한 기도영험사찰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출처 : 은적사)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大邱 隱跡寺 木造釋迦如來坐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20)
은적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로, 양식적으로 보아 조선후기 조각승 하천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조각가와 제작시기를 알려줄 문자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작품의 완성도도 높으며, 18세기 초반 불상의 제작 방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출처 : 문화재청)
후삼국시대 말 후백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왕건 에게 청병하였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현 대구)에 입성하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비슬산으로 피신하여 이곳 은적굴에 3일간 숨어 지냈다. 마침 3일간 짙은 농무로 굴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굴의 입구는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한 왕건은 훗날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강원도 철원으로 회군하였다. 그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이곳에 사찰을 건립하고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진 곳이라하여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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