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영천

‘황성옛터’ 노래비

노촌魯村 2022. 1. 2. 12:02

황성옛터 노래비가 있는 조양공원(경북 영천시 문화원길 6 (창구동))
영천조양각(永川朝陽閣.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북 영천시 문화원길 6 (창구동))
황성옛터 노래비는 조양각과 영천 문화원 사이에 있다.
황성옛터 노래비

‘황성옛터’의 본래 제목은 ‘황성荒城의 적跡’이었다. 황성옛터는 황폐해진 궁궐터를 의미하며 고려의 개성의 궁궐터인 만월대를 의미한다.

황성옛터는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한 곡으로, 최초로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대중가요로 평가 받는다.

          

1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못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2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3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설움을 가슴속 깊이 안고

이 몸은 쓰러져 가노니 옛터야 잘있거라

 

왕평(王平. 광희(光熙).이응호(李應浩))

왕평(王平1908년?~1940년)의 자는 광희(光熙), 본명은 이응호(李應浩)이며 이동암의 장남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13번지에서 출생했다.

일제 강점기에 연극·영화·대중가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인이다.

고학으로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배우학교 1기생으로 연기를 공부했으며, 일본의 포리돌 레코드사의 서울지사 초대 문예부장을 지냈다.

「황성옛터」·「대한팔경」·「비단장사 왕서방」·「조선 행진곡」 ·「항구의 일야」 등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의 애환을 담은 노랫말, 「5만원의 재보」·「경성야화」·「도적과 황금」·「홍길동전」 등 극본, 「돌아온 아버지방」·「나그네」·「남매」 등 연극 주연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인이다.

왕평은 영천에서 출생해서 5세부터 7세까지 청송군에서 살았으며, 묘소도 청송군 파천면에 있다고 전해지며, 이후의 성장 과정은 불분명하다.

왕평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현철이 운영하던 조선배우학교의 제1기 입학생으로 들어가 연기를 공부했고, 배우뿐만 아니라 극작가와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30년대 초에는 조선연극사의 전속 작가로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에는 포리돌 레코드의 조선지점 설립에 관여한 뒤 문예부장을 맡았다.

왕평은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본격적인 트로트인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과 선우일선의 신민요 「조선팔경가」를 작사하기도 했으며, 1933년부터 8장이 발매된 인기 극반 「항구의 일야」도 유명하다. 「항구의 일야」는 왕평이 작품을 쓰고 전옥과 함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이때는 작가로서는 본명 이응호를, 배우로서는 예명 왕평을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성봉영화원에 들어가 「나그네」[1937]와 「군용열차」[1938]에 출연함으로써 영화계에도 데뷔했으며, 유랑극단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던 1940년에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연극 「남매」를 공연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져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황성옛터」·「대한팔경」·「고도의 정한」·「비오는 포구」·「비단장사 왕서방」·「신아리랑」·「신쾌지나 칭칭」 등이 있는데 모두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애환과 혼을 불러일으켰던 기념비적인 노래다. 특히 「대한팔경」·「항구의 일야」는 조선인을 선동하는 노래라 하여 발표가 금지되기도 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민족의 가슴에 뜨거운 혼을 심은 우리들의 노래 ‘황성 옛터’ 그 노래를 지은 왕평 이응호 님을 기려 여기 억겹으로 살아 숨쉴 생명의 돌을 세우노라

님은 어둡고 처절했던 일제 후반기에 작사 작곡을 하면서 연극 연화를 했고 극본을 쓰면서 민족정기를 일깨운 영천이 낳은 천재요 시들지 않는 예술인이다.

비록 34세로 요절한 비운의 일생이지만 님이 남긴 자취는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푸른빛으로 남으리라

황성옛터 노래비에서 본 금호강 풍경
황성옛터 노래비에서 본 금호강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