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召文有感
-허목(許穆. 1595~1682. 조선 후기의 문신. 호 : 미수眉叟)-
千載召文國(천재조문국)
천년 조문국
亡墟足悲涼(망허족비량)
옛터 몹시 처량하도다.
繁華不復睹(번화불부도)
번화한 모습 찾을 수 없고
荒草野花香(황초야화향)
들풀과 들꽃 향기뿐이네
壘壘見古墳(루루견고분)
눈에 보이는 건 빽빽한 무덤뿐
濯濯無白楊(탁탁무백양)
백양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네.
田父耕隴上(전부경롱상)
둔덕에 밭가는 농부는
猶說景德王(유설경덕왕)
아직도 경덕왕을 이야기 하네
天地一何悠(천지일하유)
산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終古幾興亡(종고기흥망)
국가의 흥망은 몇 번이던가.
物理本無常(물리본무상)
만물의 이치는 무상한 법인데
人情徒自傷(인정도자상)
인정은 부질없이 서러워하네.
感起前古恨(감기전고한)
옛날의 슬픈 정 일어나기에
獨立慨嘆長(독립개탄장)
홀로 서서 한참을 탄식하노라
조문국(召文國)
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라고 하는 삼한 시대 초기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은 원래 조문국이었다고 기록된 이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라고 밝혀 놓고 있어 조문국의 중심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후 벌휴왕 때에 신라에 병합되어 조문군으로 편제되었다.
의성 지역 내 선사 유적은 낙동강과 위천이 만나는 서부 지역과 동남쪽의 쌍계천 유역, 북부 미천 유역의 크게 세 군데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고인돌도 이 세 하천 유역 구릉에 주로 집중되어 있으며 또한 주변에 260여 기 이상의 고분이 함께 분포한 점으로 볼 때 이 지역에서는 이들 3곳의 고인돌 분포 집단이 초기 국가 형성기의 대표적인 정치 집단으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문국의 존재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금성면 일대의 고분군이 있다.
의성 지역 전역에 많은 고분군이 있으나, 금성면 일대의 고분들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규모가 월등히 크며 탑리리에는 봉분의 지경이 20m가 넘는 것이 16기나 되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동서 41m, 남북 30m, 높이 8m에 이르는 대형분이 분포하고 있어 이곳이 중심 고분군이라 할 수 있겠다.
기록에 나타나는 조문국의 중심지와 문헌 기록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탑리 고분에서는 공작새 날개 모양 3개의 입식(立飾)을 가진 금동관[조문국 금동관]도 발굴되어 이곳이 의성 지역 유력 지배층들의 분묘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조문국의 중심지는 금성산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금성면 탑리리, 학미리 일대였음을 알 수 있다.(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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