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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칠곡

다부동 전적 기념관(多富洞戰績紀念館 Dabudong War Memorial Museum)

노촌魯村 2022. 7. 31. 14:48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6·25 전쟁 때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

다부동은 다부원(多富院)이라고도 한다. 곧 조선시대 출장 관원을 위한 국영 숙박 시설인 원이 있었으며, 다부원은 칠곡 고평역(高平驛), 선산 연향역(延香驛), 인동 양원역(楊原驛)과 통했다.

다부동은 대구 북쪽으로부터 22㎞, 남북으로 ‘대구-안동’ 국도, ‘대구-상주’ 국도가 지나고 있고, 서로는 ‘왜관-다부’ 지방도로가 이어져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하지만 다부동은 60여 가구 밖에 지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다부동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유학산이 북쪽에는 횡격실(橫隔室)을 이루고 있고, 동쪽에는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가산(架山)[902m]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반면 6·25전쟁 중 다부동 방어선이 돌파되면 10㎞ 남쪽의 도덕산(道德山)[660m] 일대까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대구가 적 포병 사격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6·25 전쟁 중 국군 제1사단이 맡은 ‘328고지[석적면]-유학산[839m]-741고지[가산면 금화리]-902고지[가산, 산성]’를 연결하는 약 20㎞의 방어선은 최후의 보루였다. 국군 제1사단은 사단 좌측에서 ‘왜관-낙정리’[의성군 단밀면, 다부 북방 43㎞]를 방어하고 있던 미 제25사단이 8월 1일 경남 마산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이 지역을 맡아 제11·12·15연대 등 3개 연대로 북한군의 남하를 막는 지연전을 펼쳐 왔다.

8월 12일에 주저항선인 낙동강 방어선으로의 철수 명령에 따라 이날 밤 8시 다부동 일대의 주저항선[‘Y선’]으로 철수를 시작하였다.

사령부를 동명 초등학교에 두고 예하 3개 연대에 대해 방어 지대를 부여하였다.

국군 제1사단은 이들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저항선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낙동강 방어 작전 중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다부동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彼我) 간에 유학산 전투, 328고지 전투, 837고지전투, 674고지 전투, 볼링장 전투, 가산산성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 뿐 아니라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가운데서 837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국군 제1사단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미 8군 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하였고, 미 8군 사령부에서는 미 제27연대[마이켈리스 연대]를 신속히 지원하고, 이어서 미 제23연대를 추가 배치했으며, 육군본부도 1개 연대를 추가 배속시켰다. 이렇게 병력 증강을 지원받은 국군 제1사단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 이래 북한군의 ‘8월공세’와 ‘9월공세’를 방어하고 나아가 이를 격파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였다.

이후 국군 제1사단은 신녕(新寧)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팔공산-가산 전투를 수행한 후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에 가담하였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냈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 사단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주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6·25 전쟁사에서 다부동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부동 전적 기념관(多富洞戰績紀念館 Dabudong War Memorial Museum.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다부리 292])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전쟁 기념관.

호국의 고장에 6·25 전쟁 전적지를 개발함으로써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안보 의식을 고취하여 전후 세대에 대한 전쟁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하였다.

1981년 11월 30일 준공하였으며, 충혼비와 구국관은 1995년 6월 24일 준공하였다.

구국 용사 명각비는 1997년 6월 24일에 준공하여 1997년 6월~2007년 7월까지 전사자 689명과 생존자 1,513명 등 합계 2,202명을 명각하였다. 또한, 2001년 6월 25일에 전사자 203명, 생존자 903명의 이름이 세겨진 구국 경찰 충혼비와 명각비가 세워졌다.

유해 발굴을 1994년 9월~1997년 4월까지 8회에 걸쳐 진행하여 1997년 5월 16일에 유해 259점을 합장하였다.

2000년 전·후반기 유해 발굴 결과 전신 유해 43구, 부분 유해 1,587점을 발굴하여 국립묘지, 또는 무명 용사 묘지에 안장하였다.

다부동 전적 기념관을 관리하며, 관람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영상물 『낙동강 전투』(12분)를 상영한다. 방문객들에게 다부동 전투에 대해 설명하고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시관은 1개동이며 면적은 247.5㎡이다. 높이 24m의 전적비 1기가 세워져 있고, 충혼비와 660㎡ 면적의 구국관이 있다. 전시품은 비행기, 탱크 등 106종 172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구국관은 최대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형태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전투 장비 T-37C(Byname: TWEET), M60A3전차 TANK, M113장갑차 CARRIER, M106장갑차 CARRIER, M48A2C전차 TANK, CM6614장갑차 CARRIER, 37mm 직사포 GUN, 45mm 직사포 GUN, 57mm 직사포 GUN, 122mm 곡사포 HOWITZER, 75mm 곡사포 HOWITZER, 40mm 대공포 ANTICRAFT GUN, 나이키유도탄(NIKE MISSILE), F-86(SABRE), 8인치 자주포, 호크(HAWK)미사일이 전시되고 있다. 그밖에 다부동 전승비와 조지훈 시비가 세워져 있다. 주차장은 5,570㎡로 소형 127대, 대형 12대를 주차할 수 있다.

다부리는 대구 북방 22km,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국도 5호선 및 국도 25호선이 합쳐지고 왜관에 이르는 지방도 908호선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좌측(북서쪽)에는 유학산이 북방을 향하여 횡격실을 이루고, 그 우측에는 해발 902m의 가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며 지형상 이 방어선이 돌파되면 10km 남쪽의 도덕산 일대까지 철수가 불가피하여 대구가 적 지상 포화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므로 다부동 일대는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투적 요충지이다.

국군 제1사단은 이러한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여 다부리 일대에 설정된 主저항선에서 대구를 목표로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써 이른바 생사기로(生死岐路)에 직면한 전황을 극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호국의 고장에 6·25전적지 중 다부동 전적 기념관을 건립 운영함으로써 구국 영령을 추모하고 국민 안보 의식을 고취하여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