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금호읍 원기리에 위치한 최무선과학관의 전경이다. 건물은 바다에 떠있는 배모양인데 최무선장군의 대마도정벌 등 해전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최무선(崔茂宣. 1325-1395) : 최무선(崔茂宣) 본관은 영주(永州)[영천]. 고조는 시조 최한의 손자인 현감(縣監) 최상지(崔尙智)이며, 증조는 성균진사(成均進士) 최익겸(崔益謙), 조부는 봉익대부(奉翊大夫) 종부판서(宗簿判書) 최극평(崔克平)이다.
부친은 통직랑(通直郞) 광흥창사(廣興倉使) 최동순(崔東淳)이며, 아들은 병조참판(兵曹參判) 최해산(崔海山)이다.
최무선은 1325년(고려 충숙왕 12) 영천시 금호읍(琴湖邑) 원기리 마단(麻丹)마을에서 태어났고 1395년(태조 4) 4월 20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최무선은 본래 기술에 밝고 병법(兵法)을 좋아했으며,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 제조법 연구에 골몰하였다.
벽란도(碧瀾渡)[고려 초부터 말까지 사용된 예성강 하구에 있는 국제 무역항]에 가서 중국 강남(江南)의 상인 이원(李元)으로부터 염초 만드는 법을 알아내어, 많은 노력 끝에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조정에 여러 번 건의하여 마침내 1377년(우왕 3) 화통도감(火筒都監)이 설치되면서 그 제조(提調)로 임명되었다.
화통도감에서는 화약 외에도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 등의 총포와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등 갖가지 화기와 이들을 실을 수 있는 전함이 만들어졌으며, 화기 발사를 전담하는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었다.
1380년(고려 우왕 6) 왜선 5백여 척이 전라도 진포(鎭浦)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자, 최무선은 부원수(副元首)로서 도원수(都元首) 심덕부(沈德符), 상원수(上元首) 나세(羅世)와 함께 전함을 이끌고 가서 처음으로 화통, 화포 등을 사용하여 왜선을 격파했다.
1383년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도 화기를 사용하여 성공을 거두자, 이후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이성계(李成桂) 등 역성혁명파가 득세하던 시기인 1389년(창왕 1) 조준(趙浚) 등의 주장으로 화통도감이 혁파되어 군기시(軍器寺)에 합속되었다. 그 시기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을 저술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최무선은 실직(實職)은 받지 못하고, 정헌대부 검교참찬문하부사(正憲大夫檢校參贊門下府事) 겸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가 되었다.
태종대에 그의 기술을 이은 아들 최해산이 등용되면서 다시 화기의 발달이 이루어졌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천자총통(天字銃筒. 보물.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 (남성동))
총통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화포(火砲)이다.
천(天)자는 천자문의 첫 자로 만든 순서를 표시하는 기호이다. 총 길이 1.31m, 통신 길이 1.16m, 포구 지름 12.8㎝로써 포 입구 띠를 제외한 마디는 모두 8개이다.
총신 포구 쪽에는 탄약을 장전하는 약실을 향하여 가로로 ‘가정을묘시월천사백구십삼근십냥장양내요동(嘉靖乙卯十月天四百九十三斤十兩匠梁內了同)’이라는 글이 음각 되어 있어, 조선 명종 10년(155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총통은 우리나라 화포 중 가장 큰 화기일 뿐 아니라, 그 명문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방 과학기술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지자총통(1986-1)(地字銃筒(1986-1). 보물.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 (남성동,진주성))
지자총통(池字銃筒)은 천(天)·지(地)·현(玄)·황(黃) 총통 중에서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우리나라 고유의 대포이다.
길이 89.5㎝, 안지름 10.5㎝, 바깥지름 15㎝이며 명종 12년(1557)에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지자총통보다 1개월 앞서 만들었다.
총구쪽에서 화약을 넣는 약통쪽으로 갈수록 두툼하게 만들었으며, 손잡이는 2개였는데 모두 파손되었다. 마디는 총구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두 10개이며, 앞에서부터 일곱번째 것과 여덟번째 마디가 서로 붙어 있어 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고 있다.
격목통은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박아 약통 속에 있는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한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지자총통은 이미 조선 태종 때에 만들어졌고 세종 때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16세기나 17세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총통 구조를 계승하여 총구, 격목통, 약통으로 나누었으며, 큰 화살이나 탄환을 넣어 사용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지자총통(1986-2)(地字銃筒(1986-2). 보물.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박물관)
지자총통(池字銃筒)은 천(天)·지(地)·현(玄)·황(黃) 총통 중에서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우리나라 고유의 대포이다.
길이 89㎝, 총구의 안지름 10.5㎝, 바깥지름 17.2㎝로 조선 명종 12년(1557)에 만들었다.
모양은 손잡이 2개가 원형 그대로 붙어 있으며, 마디가 모두 10개이고 일곱번째 마디와 여덟번째 마디가 서로 붙어 있어 화약을 넣는 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고 있다.
격목통은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박아 약통 속에 넣은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한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약통 속의 구멍은 2개이고 발사물은 화살이나 탄환을 넣어 사용한다.
지자총통은 이미 조선 태종 때에 만들어 사용한 바 있으며 세종 27년(1445)에 이르러 화약병기 개발정책에 따라 종래의 형체를 개량·발전시켰다.
이것과 함께 보물 지자총통(국립진주박물관 소장)이 남아 있고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지자총통이 2개 더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출처 : 문화재청)
현자총통(1995)(玄字銃筒(1995). 보물.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 (매곡동, 국립광주박물관))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는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 천(天)·지(地)·현(玄)·황(黃)자총통이라 붙였는데, 이 것은 그 중 크기가 3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이다.
이 총통은 1992년 전라남도 여천시 백도 근방 해저에서 파손된 지자총통, 별승자총통과 함께 끌어올린 것으로, 총 구경 6.5㎝, 전체길이 75.8㎝의 크기이다.
몸체에는 양내요동(梁內了同)이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가정을묘명천자총통(보물)을 제작하였던 자이기 때문에, 이 총통의 제작시기도 조선 명종 10년(1555)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7기의 현자총통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고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화포사 연구는 물론 국방기술문화재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황자총통(黃字銃筒. 보물.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는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 천(天)·지(地)·현(玄)·황(黃)자총통이라 붙인다. 이 것은 그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것으로, 편리한 이동을 위해 만든 것이다.
총구경 4㎝, 전체길이 50.4㎝로, 임진왜란 5년 전인 선조 20년(1587)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포 입구에서부터 점차 두터워지고, 몸에는 대나무 모양의 4마디가 표현되어 있다. 포의 끝은 둥글며, 첫째와 둘째마디 사이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으나 모습이 완벽하고 제작년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어, 화포사 연구는 물론 국방과학기술문화재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쌍자총통(雙字銃筒. 보물.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박물관)
쌍자총통(雙字銃筒)는 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개인용 소용화기(小用火器)의 일종으로, 총구에 화약과 실탄을 장전, 불씨를 점화하여 발사하는 유통식이다.
총신이 쌍으로 이루어져 한쪽 총신에서 3발을 동시에 장전, 발사할 수 있어 양쪽 6발을 목표에 집중 사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비, 눈, 바람이 있을 때는 거의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총신이 짧아 원거리 사격에 적합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 총신이 긴 반자동식 조총이 도입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길이 52.2㎝, 구경 1.7㎝, 손잡이 6㎝인 이 총통의 총구쪽은 2개의 마디(죽절)가 있고, 손잡이 부분은 단순하게 처리하여 세련미를 자아낸다.
총신에는 글이 씌여 있는데, 선조 17년(1583)에 제작되었음과 사용법이 씌여 있다. 사용법에 의하면 탄환을 2개씩 장전할 수 있으므로 총 12발을 발사할 수 있는 희귀한 예이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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