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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기록물>,<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권고-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5.10.∼5.24.)에서 승인 후 최종 등재 예정

노촌魯村 2023. 4. 18. 17:15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4.19혁명기록물」,「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2023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14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정기회의와 지난 11일에 열린 임시회의 심사결과에 따라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권고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등재가 권고된 「4.19혁명기록물」,「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오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5.10.∼5.24.)에서 최종 등재 승인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은 최종 등재가 승인되면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의해 임명된 14명의 국제적인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된 전반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함. 이번에 열린 정기회의와 임시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제출한 88개의 등재신청서 중 64건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권고 결정함

「4.19혁명기록물」은 1960년대 봄 대한민국에서 발발한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학생집회에서 시작해 대다수 국민들에게로 확산되어 3.15 부정선거에 반대하기 위해 1960년 4월 19일에 열린 대규모시위까지의 기록물로서, 이승만 대통령(1948~1960)의 퇴진을 이끈 혁명의 배경과 진행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권고를 통해 제3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유럽의 1968년 혁명, 미국의 반전운동, 일본의 안보투쟁 등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물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한국이 번영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민·관 협력(거버넌스)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19세기 당시 전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권고를 통해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기억의 저장소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이 신청한 <혼천전도>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권고 되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무예도보통지(2017년)를 포함해서 총 2종목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앞으로도 문화재청은 세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기록유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확대해 나가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록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명 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OW, Memory of the World Committee)

설 립: 1992년 설립

등재 신청자격:

- 신청대상 기록유산을 소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기관, 단체 또는 개인

- 신청대상 기록유산을 직접 소유 또는 관리하고 있지는 않으나 당해 기록유산의 중요성과 신청 필요성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단체(신청대상 기록유산의 소유주 및 관리자의 동의서 첨부 제출 필요)

등재 신청대상 기록유산

-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인류의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을 수 있는 것(세계적 중요성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 효과가 증명되어 있는 것이어야 함)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해당됨

ㅇ 문자로 기록된 것(책, 필사본, 안내 홍보물 등)

ㅇ 이미지나 기호로 기록된 것(데생, 지도, 악보, 설계도면 등)

ㅇ 시청각 자료(음악 모음집, 영화, 음성기록물, 사진 등)

등재 기준

진정성(authenticity)

유산의 본질 및 기원을 증명할 수 있는 정품이며, 그 실체와 근원지가 정확한 기록자료

완전성(integrity)

기록유산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포함되었는지 여부

세계적 중요성(world significance) (주요 기준) * 아래의 세 가지 중 최소 하나 이상 충족해야 함

(1) 역사적 중요성(Historical significance) :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관련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

• 정치적 또는 경제적 발전, 사회적 또는 정신적 운동/세계 역사상 저명한 인물/세계 변화에 중대한 사건/시대, 사건 또는 사람과 관련된 특정 장소/독특한 현상/주목할 만한 전통 관습/다른 국가나 공동체 간의 관계 발전/삶과 문화 패턴의 변화/역사의 전환점 또는 중대한 혁신/예술, 문화, 과학, 기술, 스포츠 또는 삶과 문화에서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

(2) 형태와 양식(Form and style) : 뛰어난 미적, 형식적, 언어적 가치를 가지거나 형태 및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3) 사회적, 공동체적 또는 정신적 중요성(Social, community or spiritual significance) : 특정 공동체가 해당 기록유산에 갖는 정서적 애착이나 현재 시점에서 공동체의 정체성과 사회적 응집에 기여하는 경우

세계적 중요성(world significance) (비교 기준)

(1) 독창성 또는 희귀성 : 독창적(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에 유일한 종류) 또는 희귀한(수많은 기록 중에서 남아있는 소수 중 하나) 자료

(2) 상태 : 기록물의 훼손 정도, 보관 상태 등 기록물에 대한 위험 및 보존 현황, 각종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을 담보할 조치, 적절한 보존 및 접근 전략의 존재 등

<법률 기준>

(1) 소유권 : 신청한 등재 목록에 대한 소유자(관리자)의 동의 필요

(2) 접근성 및 저작권 : 해당 유산에 대한 소유자(관리자)의 접근 및 저작권 사용승인 필요

* 등재 신청 불가 대상
• 당대의 정치 지도자 및 정당의 문서
• 국가의 헌법 및 그와 유사한 기록
• 기관 소장 기록물 전체(중요성, 통일성, 일관성 입증 필요)
•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기록
• 유엔 헌장 및 유네스코 헌장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기록

등재 절차

등재신청 대상

• 신청 건수 : 국가별 2건(격년), 국제공동등재는 제한 없음

• 신청 대상 :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인류의 중요한 기록(세계적 중요성이 직/간접 증명된 것)

등재 절차

□ 4.19혁명기록물

▮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4월 19일, 학생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 자료를 말한다. 1960년 2·28 대구 학생시위부터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까지 그 원인, 전개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 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등 혁명의 전후 과정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물이다.

▮ 4·19혁명은 식민지에서 해방 된 지 15년, 한국전쟁 종료 이후 7년밖에 안 된 아시아의 최빈국이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성공한 혁명이었다.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서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이는 전후 제3세계에서 일어난 최초의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유럽의 68혁명, 미국의 반전운동, 일본의 안보투쟁(전공투) 등 1960년대를 휩쓴 세계적인 학생저항운동의 시발점이었다.

▮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미·소 분할점령으로 불가피하게 남북이 분단되었고, 1950년 세계적 규모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3년 동안 치렀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450만의 사상자와 45%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분단은 계속되었다. 1952<더 타임스>에 실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문장이 세계 일반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4·19혁명으로 세계의 일반 시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4·19혁명 기록물은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조건에서 10살 안팎의 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독재에 맞서 비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이다. 4·19혁명의 숱한 현장 사진기록과 수기들은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우쳐주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세계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 동학농민혁명기록물

▮ 한국 사회의 근대적 전환기인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및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적 봉건주의 사회에서 근대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이며 실험적 단계에 있었다. 동학이라는 의미도 서양의 종교와 학문에 대립되는 것으로 19세기 후반의 경제 파탄과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 등 사회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비록 그들에 의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 민중들이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고 평등사회를 해결하고자 무장투쟁을 벌인 것은 세계사적인 모범이 될 만한 사건이다.

▮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동학군은 집강소라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았다. 이러한 형태의 거버넌스는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으로, 19세기 당시까지 유사한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이 번영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중국군과 일본군의 조선으로의 군대 파병, 이로 인한 청일전쟁 촉발과 일본의 승리로 이어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질서 해체를 촉발시켰다. 신청 유산은 어떻게 민중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보편적 가치, 즉 평등, 자유, 인권, 정의의 방향으로 전진시켜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저장소이다.

▮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동학농민군, 정부, 관료, 진압군, 민간지식인 등 여러 주체가 직접 생산한 종합적인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물에는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 정부 보고서,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농민혁명의 진행과정과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리와 평등,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희귀성이 있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