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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보물 지정 예고

노촌魯村 2023. 4. 29. 09:31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023년 4월 27일(목) 전라남도 강진군에 위치한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康津 白蓮寺 大雄寶殿)」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강진 백련사는 고려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결사처(結社處 : 불교의 혁신운동)로써 조선시대에도 많은 승려들이 수행했던 사찰이며,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1760년 화재 이후 1762년에 중수한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대웅보전은 공포의 형식과 초각 등 세부기법이 화려하고, 기둥 상부의 용머리 조각, 천장 상부의 용머리 장식 등은 해학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실내를 채운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장식 등은 18세기 이후 불전 건축이 장식화 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 공포(栱包): 전통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상부에 짜 맞추어 올린 부재

* 초각(草刻): 건축부재에 다양한 무늬를 새겨서 장식하는 것

  또한 대웅보전 중수 기록인 만덕산백련사대법당중수기사찰 기록인 만덕사지등을 통해서 대웅보전의 중수 배경과 불사에 참여한 장인의 계보와 교류를 확인할 수 있어서 불교사와 건축사를 고찰할 수 있는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높다.

  한편 요세는 백련사에서 백련결사문을 주도하여 신앙결사 운동의 이론적 측면을 완성함으로써 지눌의 수선결사와 함께 대표적인 신앙결사의 축을 이루었다. 또한 백련사의 승려들은 다산 정약용(1762~1836)과 협업하여 만덕사지를 편찬하는 등 불교와 유교가 서로 교류했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이 백련사 대웅보전은 화려한 18세기의 건축적 특징과 관련 기록이 풍부하고,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축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康津 白蓮寺 大雄寶殿)」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康津 白蓮寺 大雄寶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ㅇ 구조/규격 : 단층 팔작 / 정면 3칸·측면 3칸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백련사

ㅇ 지정면적 : 233.4㎡

□ 지정사유

  강진 백련사는 고려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결사처로서 조선시대에도 많은 승려들이 수행했던 사찰이며,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1760년 화재 이후 중창 불사를 통해 1762년에 중수 건물이다.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의 문화재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불전 건축의 장식화 경향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형식이다. 제공의 외부는 초제공에서부터 3제공까지 연화 무늬가 결합된 앙서형, 4익공은 연봉이 달린 수서형, 5운공은 봉두이고, 내부는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연봉·연밥·연밥·연꽃을 조각했고 그 위로 봉두를 올렸다. 이러한 살미의 구성은 호남을 중심으로 형식화되어 점차 영남까지 확산되는데, 백련사 대웅보전의 건축연대는 그 중간에 있다. 또한,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지 않고 우물천장을 이중으로 설치한 점, 실내를 채운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장식, 정면 기둥에 끼워진 청룡과 황룡 모습의 안초공, 살미를 길게 빼서 내주의 보아지로 사용하는 기법 등은 당시 건축양식의 시대적, 지역적 전개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둘째, 사찰 건축 관련 기록이 풍부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 백련사 대웅보전 건축과 관련된 기록은 만덕산백련사대법당중수기가 대표적이다. 중수기에는 복구 사업의 정확한 일정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대시주질, 연화질, 야장, 목수질 등 직임과 인명을 정리해두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찰 건축의 추진과정을 복원할 수 있으며, 담당자들 간의 인맥이나 영향 관계도 추적이 가능하다. 특히, 도편수, 부편수, 승묵편수 등 불전 건축 목수들의 계보와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이다. 나아가 만덕산백련사중창기, 만덕산백련사비등과 함께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만덕사지󰡕가 전하고 있어서, 불교사의 전체적인 맥락 아래 사찰 또는 불전의 건축생산사를 고찰해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셋째, 고려와 조선 불교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백련사는 고려시대에 원묘법사 요세의 백련결사가 개설되고 조선시대에 취여삼우의 법회가 열렸던 장소이고, 효령대군의 지원에 힘입어 중창했던 역사가 있다. 또한 승려들은 사대부에게 의탁하여 중창기와 사적기를 작성했고, 특히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백련사의 승려들과 협업하여 󰡔만덕사지󰡕를 편찬했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의 작업이며, 법당 실내에는 신라시대 명필 김생의 글씨가 집자되어 있다. 이처럼 백련사의 역사는 권력과 민중, 불교와 유교의 상호교류를 확인하고 있으며, 대웅보전은 그 한 시기를 예증하는 건물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