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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상주

금돌산성

노촌魯村 2006. 2. 21. 18:01

 

금돌성은 모동면 사무소로부터 서쪽으로 약 6km 지점인 백화산에 있고 주위 총연장 20km에 달하며 요소 요소에 성의 무너진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상주는 신라시대 북방 경략을 위한 군사요지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특히 백제와는 더욱 더 많은 지역이 연접되어 있어서 서역은 항상 접전지가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등에 의하면 백제가 신라를 침략함에 진덕왕 때 김유신장군을 상주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백제를 격파하였고 무열왕 때에 이르러는 왕 7년 6월에 태자에게 명하여 대장군 김유신은 품일, 흠춘 등과 더불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하고 왕은 <금돌성>으로부터 소부리성에 이르러서 제감 천북을 당나라로 파견하여 전승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 기록상의 <금돌성>과 무열왕이 행차한 곳이 현지의 전설이나 현 읍지인 <중산지>의 기록과 현지 조사에서, 모동 백화 산성이 바로 금돌성이라는 추정이다. 이곳 산성을 세분하면 석문, 내외 성지, 옥문곡 대궐터, 창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옛날에 신라에서 백제로 가려면 상주를 거쳐 이곳 수봉리 넓은 들을 지나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고개가 지금도 문바우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며 이 고개만 넘으면 곧 황간 땅이다. 상주시에서 갈방장터를 지나 대포리(모서면)를 거쳐 소정리(모서면)를 지나면 대지가 약간 높아지고 다음 동리인 <솔미>부락부터 평원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 평탄한 길로 <배골> <선천>을 거쳐 수봉리를 지나면서 약간 언덕진 길을 올라 <문바우>고개를 넘게 되니 차도가 개설되기 전의 구로 였고, 신라시대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수봉리 옥동서원에서 앞개울을 건너 북쪽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 외성지가 나서고 여기서 1.5km 쯤 더 가면 보문곡이다. 그 위에 대궐이 있었으므로 그 입구의 문이라는 뜻에서 붙혀진 속명이다. 지금도 이 골짝에서는 양쪽 산등성이로 곳곳에 성지가 있다. 1978년 80m를 정부의 국방유적 보수사업 계획에 의한 원형복원을 상주시가 시행했다. 과연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산이 되는 동시에 사방을 지키고 또 지배할 수 있는 천연적인 조건을 구비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성곽의 형식은 내성과 외성, 차단성, 토루로 구분하였는데 백화산 어귀에 차단성을 쌓고 성문을 마련하였으며, 외성은 보문곡에 접어들면 시작된다.

이 금돌성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차라대(車羅大)가 1254년 겨울(10월)에 침공했을 때 은척면 황령사(黃嶺寺)의 승려 홍지(洪之)가 민병을 거느리고 가서 대파함으로써, 백화산 정상을 한성봉(恨城峰)이라고도 하며, 저승골이 있기도 하다.

또한, 조선 임진왜란때에는 우리지역 도지정문화재인 월간.창석의 형제급란도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상주시청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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