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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군위

군위 불로리 마애불

노촌魯村 2006. 5. 18. 13:12

이 보살은 지면에서 약 7m 암벽에 조각된 입상으로 고려말 -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살상의 형상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얼굴은 턱이 넓게 방형(方形)이고 목에는 삼도(三道)를 새겼다.

조각 양식은 정면관(正面觀)으로 가슴을 경계로 위아래의 조각기법이 동일하지 않으며, 가슴 위쪽은 반입체적으로 반원각(半圓刻)하고, 아래쪽은 얕게 부각(浮刻)하거나 선각함으로써 회화적 표현을 가미하였으며, 보살상의 높이는 2.4m이다.

 

 

 

 불로리 마애보살입상

지면에서 약 7m의 암벽에 조각된 높이 2.4m의 마애보살입상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홍씨 홍판교는 대대로 부자에다 열두 대문을 두고 하인도 많이 거느렸으니 마을에서 제일 부자요 권세도 있었다. 온 마을이 이 집으로부터 소작을 했고 년간 소작료만 해도 1만석이나 되었다. 그러므로 안동 예안 등 모든 손님은 이 집을 찾고 하루에 손님이 연일 100여명이었으니 안주인은 손님 접대에 늘 바빠다. 선조 때 나라가 기울면서 백성들은 몹시 가난했는데 스님이 부촌을 찾아다니며 시주를 구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박타사의 스님들이 오자 안주인은 너무 많은 손님과 스님들 때문에 귀찮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봄, 인각사의 도승이 시주 차 왔는데 홍판교의 손자 장사랑 응경은 시주는 원하는 대로 할테니 손님을 줄일 방법이 없느냐 했다. 묵묵히 생각하던 대사는 홍부자에게 석공 3명을 구해 박타산 지류 절벽 암반에 미륵불상을 조각토록 했다. 곧 석공을 불러 수십일 동안 불상을 조각하고 남쪽 암벽에 나무아미타불을 각자하게 했다. 대사가 떠나면서 3년 이내 손님이 끓어질 것이라 했다. 그 후 홍부자는 차차 가산이 기울어 자연 손님들도 발걸음을 돌렸다. 후일 지관의 말에 의하면 홍부자의 집터는 제비혈이고 불상터는 제비가 날아가는 형의 제비의 눈인데, 이곳에 불상을 조각하여 제비가 오지 못하니 자연 제비집의 제비알은 부패 되어 망했다고 한다. 남양홍씨는 한 사람씩 이곳을 떠나 불상이 보이는 반대쪽인 영천, 의성 등지로 이사했다. 지금도 마애보살입상에 치성을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경상북도 : 전설과 함께하는 경북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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