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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 생각 저 생각

갈림길

노촌魯村 2007. 2. 15. 19:17
 

갈림길

 

 최근 경주 남산 새삿갓골에서 부처님의 불두(佛頭)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으로  접했다. 전에 그 곳을 여러 번 답사했던 적이 있고, 혹시나 불두가 있을까 하여 주위를 비교적 꼼꼼히 살펴보고도 찾지 못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 소식을 대하니 매우 기뻤다. 그 기쁨과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고자 불두를 직접 찾아 가기로 마음먹고, 평소에 가는 방향이 아닌 칠불암에서 봉화대를 거쳐 새삿갓골로 방향을 정하고는 답사길에 올랐다. 봉화대를 지나니 여러 갈림길이 있었다. 갈림길에서 신중하게 이 길, 저 길에 대해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다. 잘못 선택하여 엉뚱한 골짜기로 들어가거나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위험한 경우에 처하지 않도록 아주 신중하게 고려하다가, 문득 20여 년 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20여 년 전 동계휴가가 시작되던 동짓날, 경주 서쪽에 있는 단석산으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과 등산을 갔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체감 온도도 과히 낮지 않았으며, 겨울산의 풍광(風光)을 감상하면서 상인암을 지나 단석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즐겁기만 하였다. 정상에서 심호흡을 하고 내려가는 길에 나는 문득 왔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  지형을 정찰하고 내려가는 길을 정하여 하산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참을 내려 온 후에야 산 정상의 갈림길에서부터 방향을 잘못 짚었다는 것을 알았고,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뒤였다. 해는 서산에 걸려있고 곧 어두워질 것 같아 불안 속에서 고민하다가, 아래에 보이는 동네를 목표로 무조건 하산하기로 결정을 했다. 길도 아닌 숲을 헤치고 또 헤쳐 정신없이 산 아래에 겨우 도달했다. 이제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집으로 가는 국도를 찾아야 하는데 눈앞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앞을 막고 있었다. 또 다시 고속도로의 지하 통로를 찾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바람 부는 벌판을  헤매고 헤매어 겨우 통로를 찾아 국도로 나왔고, 지나가는 차를 잡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땅 위의 길은 아니지만, 그동안 한 기관이나 단체의 책임자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 일이 종종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내 나름대로는 신중하게 결정했지만 나중에 후회를 한 적이 꽤 있다. 나의 능력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없이 그 일에 단독으로 몰입해서 결정하는 ‘돈키호테식 열정’이나, 혹은 누군가를 대할 때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숫기 없음’ 등의 성격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과 경험에 단련되어 어느덧 갈림길을 대하는 데 있어서 다소의 자신감이 생겨났다. 앞서 간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살펴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것도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결정을 한다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후회는 안 할 것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인생 경험으로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이다.  

 내 인생의 갈림길을 통틀어 가장 잘 선택했다고 자부하는 교직(敎職)! 성격이 무척 내성적이라 권모술수(權謀術數)가 힘을 쓰는 사회에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 좋고, 교실이 좋으며, 가르치는 것이 좋아’ 선택한 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부귀영화 없는 좁은 길을 택한다고 비난도 받았고, 실제로 교직이라는 험한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길로 간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하여 후회는 없으며 탁월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깨달음을 주는 스승은 결코 멀리 있지 아니하고 가까이 있다. 갈림길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는데, 저 멀리 새삿갓골의 불상이 보이고 아마 그 아래쪽에는 일천여 년 전의 불두(佛頭)가 있겠지!


 

(당시 2005. 10. 31 신문 기사 중 일부)

경주 남산 새갓곡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불두가 새로이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불두로 새갓곡 제3사지 석불좌상은 전체적인 비례가 당당함을 잃지 않은 8세기 후반의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게됐다,
31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임희숙씨(경주남산연구소 회원)가 지난 23일 남산 새갓곡 일대를 답사하던 중 새갓곡 석불좌상의 아래쪽 37m지점에서 불두로 보이는 석재를 발견하고 경주시 문화재과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발견문화재로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