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迦智山) 혹은 석안산(石眼山)이라고 하는 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석남사(石南寺)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의 창건이래 여러 차례 중건 중수(重建重修)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후 1674년 조선 현종 15년 탁영(卓 靈), 선철(善哲)선사(禪師)등에 의하여 중건되었으며 다시 1803년 순조 3년에 침허(枕虛) 수일(守一)선사 등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1912년 우운(友雲)스님에 의하여 다시 중수된 바 있으며 1957년 비구니(比丘尼) 인홍스님 께서 주지로 부임하신 이래 각 당우를 일신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건물 동수가 모두 30 여동이며, 대한 불교조계종 산하 80여개의 선원 중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종립 특별 선원 (宗立特別禪院)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남종선 시조는 도의(道義) 선사다. 도의는 37년 동안의 중국에서 수행정진 끝 에 금의환향하였지만 고국에서는 아직 그의 혁신 이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설악 산 진전사(陳田寺)에 들어가 제자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다가, 가지산으로 내려와 창건한 선찰이 석남사다. 이곳은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많은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이곳의 삼층석탑은 824년에 도의가 호국의 염원 아래 2층 기단 위에 3층으로 세운 것이며 원래는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절 경내에는 도의국사의 부도 (보물 369호), 3층 석가사리탑,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5호), 석남사 수조(문화재자료 제4호)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한국관광공사)
석남사 삼층석탑
이 석탑은 석남사(石南寺)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서 2층으로 된 기단위에 세운 신라 일반형의 3층으로 된 석탑이다. 탑은 석남사를 창건하였다는 도의가 호국의 염원으로 세웠다고 절의 사기(寺記)에서 전해온다. 상층기단에는 우주(隅柱)가 있고 각 탑신에도 모두 우주를 둘렀으나 기단의 탱주(撑柱)는 볼 수 없는데 옥개석(屋蓋石)은 각층마다 5단의 수법을 취하였다. 탑의 높이는 2.5m의 소형으로 신라말 때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문화재청)
석남사부도
석남사 동북쪽 언덕의 넓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찍부터 석남사를 세운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불려왔다.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을 취하고 있으며, 8각의 바닥돌 위에 기단부(基壇部)와 탑신(塔身)을 놓은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사자와 구름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에는 상·하·좌·우에서 안쪽을 향하여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안으로 꽃모양의 띠를 둘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얇게 새겼고, 앞·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문의 양 옆으로 신장입상(神將立像)이 배치되어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상세히 표현되었으며,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어 길쭉해 보이며, 바닥돌의 폭이 좁아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신장상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가운데받침돌의 안상조각에서 시대가 내려옴을 볼 수 있으나 각 부분이 완전히 보존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기단부의 가운데받침돌에서 사리장치를 두었던 공간이 확인되었으나 사리장치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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