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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석남사

노촌魯村 2006. 6. 27. 20:10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에 여승 수도의 도량으로 자리잡고 있는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 보림사의 개종자 도의가 헌덕왕 16년(824)에 창건하였다 한다.
  조선 제 18대 현종 15년 (서기 1674년) 탁영,선철선사에 의하여 중건되고 다시 또 조선 제 23대 순조 3년(서기 1803년) 침허, 수일등의 선사가 중수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황폐해진데다가 1950.06.25에 일어난 한국전란으로 폐허는 되었으나 그래도 신라고찰의 모습이 남아있던 것을 모조리 파괴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후 비구니인 인홍스님께서 주지로 부임해 오자 온통 폐찰이 되다시피 된 석남사를 재건한 것이다.

먼저 대웅전, 극락전, 그 밖의 부속시설을 중수중창을 하고나서 그 다음에 종각, 침계루, 심쇄당, 무진료, 상락료등을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케 하였다.
  석남사는 저 멀리 강원도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으면서 줄달음질을 치다가 도중에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산을 형성한 뒤 다시 뻗으면서 고헌산맥을 형성했는데, 이 고헌산맥에는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영취산 등의 영산 명봉들을 이루어 놓고 말았다.가지산에는 석남사, 신불산에는 간월사, 영취산에는 통도사 등의 신라 명찰이 들어 앉게 되었으니 불심과 영통한 법운 영역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일찍이 도의국사는 영산 명지를 찾다가 이 곳 가지산의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하여 석남사를 창건한 것이다.
  도의국사는 신라 제 37대 선덕왕 1년에 당나라에 건너가서 지장의 제자가 되어 그 불법을 물려 받고 법호를 도의라고 개명한 뒤 821년에 신라로 귀국하였다. 신라에 돌아와서는 남선을 전파시켰으며, 도의의 남선에 의하여 북선과 함께 두줄기 선문이 생기게 되었다.
  도의는 돌아온지 3년만에 석남사를 창건하고 가지산파의 개조가 되었다. 이렇듯 유서깊은 석남사에는 건물 이외에도 대웅전, 극락전, 정수원, 강선당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정조 15년(1791)에 세웠다는 극락전이고 다음 가는 건축물은 순조 3년에 세운 대웅전이다.
  이 사찰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부도 1기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 수조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석남사는 울산사람들에게 늘 열려있는 휴식처의 역할뿐만 아니라, 한겨울 눈이 내려 온 절을 하얗게 만들 때 가지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모습은 어디에 비겨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출처:울산광역시청)

 

석남사 삼층석탑은 2층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세운 3층 석탑이다. 원래는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높이 2.5m로 규모는 작으나,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의 아래층은 일부가 땅에 묻혀 있는데, 모서리의 각을 줄여 둥글게 처리했다. 상륜부(相輪部)

는 노반석(露盤石), 앙화(仰花 : 위로 향한 꽃), 보륜(寶輪), 보개(寶蓋) 등을 갖추고 있다.

(출처: 울산광역시청)


 

 

 

석남사는 824년(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부도(浮屠)는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遺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
  이 부도는 높이 3.53m에 이르는 팔각 원당형(八角圓當形)으로 도의국사의 사리탑(舍利塔)이라고 전한다. 1962년 5월에 해체 보수되었는데, 이때 기단 중단석 윗면 중앙에서 직사각형의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하대석(下臺石)에는 사자(獅子)와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중대석(中臺石)에 있는 창모양의 안상(眼象) 속에는 꽃무늬띠를 새겼다. 8판 연꽃좌(蓮花臺座) 위에 놓은 탑몸돌에는 신장(神將)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 부도 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출처 :울산광역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