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목은 양 선생 유허비
가정 목은 양 선생 유허비각
목은 기념관
목은 기념관 앞의 석상
목은이색(牧隱李穡)선생 유적지(遺蹟地)
西쪽으로는 드넓은 영해평야(寧海平野)가 펼쳐있고, 그 뒷편으로는 낙동정맥(洛東正脈)의 크고 작은 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東으로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창해(滄海)가 펼쳐 있는 이곳은 고려 말 정치가, 대학자이며 대문호(大文豪)이었던 목은이색(牧隱李穡)선생의 유허(遺墟)이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 시호는 문정(文靖), 가정 이곡(稼亭 李穀)선생과 함창김씨를 父母로 하여 1328년 이곳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無價亭)에서 탄생하였으며, 일찍이 20세에 부친 가정공이 머물던 원(元)나라에 유학을 하였다. 귀국 후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숙옹부승(肅雍府丞)을 시작으로 30세에 우간의대부, 40세에는 판개성부사 및 성균관의 대사성을 겸직하였고, 47세에는 왕명(王命)으로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출신인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비명(碑銘)을 찬(撰)하였다. 58세에 이르러서는 벽상삼중대광검교시중(壁上三重大匡檢校侍中)에 올랐으며, 62세에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제수되었다. 64세에는 벽상공신삼중대광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에 올랐다.65세때에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고려가 망(亡)하였으나 고려조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며, 마침내 69세에 여강(驪江 지금의 여주의 남한강) 청심루(淸心樓)아래 연자탄(燕子灘)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은선생께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향을 떠났으나, 종신토록 고향을 잊지 않았다. 특히 영덕과 관련하여서는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와 유사정기(流沙亭記)외 20여수(首)에 이르는 시(詩)가 있어 당시 고향에 대한 선생의 생각과 당시의 풍습과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7,000여수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을 남긴 대문호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性理學)을 진작시킨 대학자이신 목은선생(牧隱)의 인연(因緣)을 숭앙(崇仰)하고자 선생의 자취가 남은 이곳 유허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유적지의 안내문)
목은 기념관 내부
목은 기념관 입구에 본 영해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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