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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포항

보경사

노촌魯村 2008. 11. 18. 18:11

 

 

 보경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중남산을 등에 업고 좌우로 뻗어난 내연산 연봉에 둘러싸여 있으며, 12폭포로 이름난 그윽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을 껴안고 포근하게 배치되어있다.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온 대덕지명 법사가 왕께 아뢰어 「동해안의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략을 막고 장차 삼국을 통일하리라」하자 왕이 기뻐하며 포항을 거쳐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데 오색구름이 덮힌 산을 보고 찾은 곳이 내연산이며 그 연못을 메우고 팔면보경을 묻고 절을 창건하여 보경사라 하였다 한다. 서운암, 청련암, 문수암, 보현암이 있다. (포항시청)

 

 

 보경사 오층석탑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건립된 5층 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한다. 금당탑기(金堂塔記)에 의하면 도인(道人)과 각인(各人)이 문원과 더불어 탑을 건립하였다고 하며, 탑층기단(塔層基壇) 위에 당주(幢主)가 있고 탑신(塔身)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신의 체감율(體感率)이 낮아 고준(高峻)하다. 상연부(上蓮部)는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고려시대에 제작된 원진국사비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이며, 비 상단귀점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진국사(1187~1221)의 속성(俗姓)은 신씨(申氏), 호(號)는 승형(承逈), 자(字)는 영회(永廻)이며, 13세인 1200년에 희양산(曦暘山) 봉암사(경북 문경시 가은읍 소재)의 동순(洞純)에게서 삭발하고 이듬해 금산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명종의 후애(厚愛)를 받으며 전국명산을 유력(遊歷)하고 희종 4년(1208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머물다가 강종(康宗) 3년에 삼중대사가 되고 고종 3년(1206)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경진년 봄에 의종은 그의 넷째아들을 삭발하여 대사에게 친속하게 하는 등 왕실의 신임을 받았고, 고종 8년에 팔공산 염불사에 이거한 후 10월 10일 입적하니 왕이 국사(國師)로 추증(追贈)하고 시호를 원진(원진)이라 하였다. 비명은 통의대부 추밀원 우부승선성 국자감 대사성 사자금어대신(通議大夫 樞密院 右副丞宣成 國子監 大司成 賜紫金魚大臣) 이공로(李公老)가 짓고 글씨는 장사랑 대관서승겸 보문각 교감(將士郞 大官署承兼 寶文閣 校勘)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년)에 세워졌는데 갓이 없고 신석양각(身石兩角)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龜趺)와 대석(臺石)은 단일석(單一石)이고 비좌(碑座)는 폭(幅)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으며 신석(身石) 둘레에는 7.4cm의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장식하였다.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서체는 큰 글자는 전서체(箭書體)로 옆으로 적었고 작은 글자는 해서체(楷書體)로 아래로 적었다. 글자 크기는 큰 글자는 7.6cm, 작은 글자는 2.0cm이다(포항시청)

 

 

 

 

 

 

 

 원진국사보도(보물 제430호)

고려 고종 11년(1224년) 제작된 원진국사부도(圓眞國師浮屠)는 화강암으로 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다.
하대석(下臺石)은 3단, 아래쪽단(下側段)은 무문팔각(無紋八角), 상단은 섬세한 단판복련(單辦伏蓮) 32엽(葉)을 새긴 복련석(伏蓮石)이고, 중대석(中臺石)은 각우각(各隅角)에 우주(隅柱)만 있고, 상대석(上臺石)은 윗면에 받침있는 앙연석(仰蓮石) 문양(紋樣)이 있다. 탑신(塔身)은 팔각석주(八角石柱)와 비슷한데 우주(隅柱)가 있는 일면에 문호형(門戶形)이 모각(模刻)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아랫면 우각(下面隅角)으로 뻗은 융기선(隆起線)이 있으며, 전각(轉角)에 귀꽃을 장식하였으며, 추녀는 두터운 편이고 상륜부(相輪部)는 팔엽연화(八葉蓮花)의 앙화(仰花) 위에 구형(球形)의 복발(覆鉢)을 높이고 다시 앙화형의 한 돌을 높인 다음 보주(寶柱)를 얹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부도(浮屠)이다.(포항시청)

 

 

포항보경사괘불탱(浦項寶鏡寺掛佛幀.보물  제1609호.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622번지 보경사)

보경사 괘불탱은 1708년(숙종 34)에 조성되었지만, 17년 뒤인 1725년(영조 원년)에 중수하였다. 화원은 의균(義均)·석민(碩敏)·성익(性益)·지붕(智朋)·체환(體環)·쾌민(快敏)·삼학(三學)인데, 모두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파계사의 불화 조성에 참여한 화사로 주로 경상도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괘불탱은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의균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대형의 화폭에 단독의 존상만을 그린 구성은 매우 단순하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계열의 색만을 이용해 조화와 대비를 훌륭하게 처리하였고, 여래가 입고 있는 가사의 조(條)에 금 바탕에 녹색으로 문양을 내는 장식이나 끝단의 세부 문양 등 세부장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보경사 괘불탱같이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 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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