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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포항

법광사지

노촌魯村 2007. 3. 27. 19:12

법광사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왕명에 의하여 건립된 사찰인 법광사터이다. 법광사는 건물 규모가 525칸이나 되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현재 법광사터에는 1952년에 건립한 법광사가 있고,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당간지주와 조선 영조시대에 세운 사리탑중수비가 남아 있다.
연화석불좌대는 소실된 대웅전 석가불의 좌대로 추측되는데, 높이 1.1m, 직경 2.2m, 원경 0.5m이다. 이중기단 위에 4층으로 된 석가불사리탑은 인도석가모니 진신사리 22립(粒)을 보관하고, 왕족의 혈통을 계승하여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탑의 높이는 4.2m이다. 쌍두귀부는 너비 1.4m, 높이 1.8m이다.
법광사 북쪽방향 150m 지점에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이 있다.

 법광사지 석가불사리탑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법광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납석제ㆍ청동제 사리호와 2매의 탑지석

 ( 탑 안에서 나온 2개의 사리호는 각각 청동제와 납석제로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납석제 사리호는 공 모양의 사리기는 인도 초기에 유행했던 모양을 따르고 있어 8세기 무렵 조성됐음을 보여준다. 안에는 8과의 사리가 봉안됐으며, 겉면에는 묵으로 쓴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라는 구절이 있다. 높이 7.5cm의 청동제 사리호는 납석제 사리함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 사리 외함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2매의 탑지석 가운데 신라 때 만들어진 1석에는 ‘회창 6년 병인 9월 옮겨 세우고 수리하다. 원컨대 대대로 단월은 정토에 태어나시고 금상께서는 복과 수명이 길이 뻗치소서. 안에 사리 22매를 넣다. 상좌 도흥(道興) 대화 2년 무신 7월 향조(香照)스님과 비구니 원적(圓寂)이 재물을 희사하여 탑을 세웠다. 절의 단월은 성덕대왕(成德大王)이며 전(典)은 향순(香純)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대화 2년은 흥덕왕 3년(828)으로, 이 때 향조.원적스님 시주로 탑이 세워졌으며, 회창 6년인 문성왕 8년(846)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됐다는 내용이다. (성덕대왕 :성덕대왕 김균정(?~836)은 원성왕의 손자이자, 신무왕.헌안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822년 발생한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고 상대등에 오르지만,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고 난 뒤 벌어진 왕위다툼에서 불행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신무왕이 즉위하자 성덕대왕으로 추존됐다.) 

 

 연화석불좌대

 1952년에 건립한 법광사

 법광사지의 폐석등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

 숭안전 기단(법광사지의 석재를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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