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포항

등대박물관

노촌魯村 2006. 12. 25. 11:19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호미곶은 호랑이의 꼬리라하여,한반도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으로 일찍이 16세기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는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호미곶(虎尾串)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 하였다.영일만의 끝부분(포항에서 38㎞)인 호미곶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역으로 각종 물고기의 회유지이다. 따라서 정치망 어업이 활발하고, 오징어, 꽁치, 고등어, 김, 미역, 전복, 성게 등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1903년에 만든 국내 최대규모의 등대와 1985년 준공한 국내 최초의 등대박물관이 위치한 이 곳은 전국에서 일출을 가장 빨리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명소이자 청정해역을 보유하고 있어 호미곶(대보면) 자체가 자연공원이라 할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주변의 웅장하다.

 

 등대박물관은 산업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의 시설과 장비를 영구히 보존.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체험 학습공간으로서 항로표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꿈을 키워주는 문화 공간입니다.

 옛날부터 선박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하여 횃불, 봉화, 꽹과리 등을 이용하여 항해의 지표로 삼았으나 1800년대 후반 서양 상선의 동양진출과 부산, 인천, 원산항 등의 개항으로 선박 운항이 빈번해짐에 따라 우리나라도 체계적인 항로표지시설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1894년 '공무아문 통신국 관선과'에서 항로표지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하여 1895년 6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우리나라 연안에 등대건설을 위한 위치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1902년 3월 인천에 '해운등대국'을 설치하였습니다.
같은 해 5월부터 인천항 입구 팔미도, 소월미도 등대 및 북장자서, 백암등표 건설에 착수하여 1903년 6월 1일 점등, 운영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의 시작이었습니다.
항로표지는 해양교통안전확보와 근대화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으나 시대적 변천으로 항로표지시설과 관련 용품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이를 유물로 영구히 보존하여 후세에 물려주고 해양교통안전을 위한 항로표지의 중요성과 바다사랑 정신을 함양하고자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호미곶 등대(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39호)가 있는 호미곶에 1985년 2월 7일 우리나라 유일의 등대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등대가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면서 파란 바다와 푸른 숲, 그리고 하얀 등대가 어우러지는 등대박물관에 유물전시를 통한 문화체험과 학습장소 및 항로표지 역사보존과 발전연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1996년도부터 제2전시관(등대관)과 각종 부대시설 건립 및 전시물 보완을 위한 확충사업을 추진하고 2002년 4월 19일 재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자료에서)

 등대박물관네부

 

 

 

 

 

 

 

 

 

 

 해양수산관

 해양수산관 내부

 

 

 

 

 등대박물관에서 본 호미곶 바다

 야외 전시관

 

 

 

 

 

 이곳 해맞이 광장은 새천년 한민족해맞이축전 개최장소로 13,920평의 부지에 기념조형물(상생의 손), 성화대, 영원의 불씨함, 채화기(천년의 눈동자), 캐릭터상품특판장, 공연장, 주차장, 관리소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광장 진입로에 조성된 유채꽃단지에는 매년
4월~5월경에 유채꽃이 만개하고 있다. 특히 이곳 광장의 기념조형물은 사람의 양손을 청동 소재로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하여 서로 마주보는 형상으로 상생과 화합을 상징하고 있으며 변산반도의 천년대의 마지막 햇빛, 날짜변경선에 위치한피지섬의 새천년 첫햇빛, 이곳 호미곶 새천년 첫햇빛 등이 합화ㆍ안치된 성화대의 불씨는 각종 국가대회 성화의 씨불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

157년(아달라 4)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에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나섰는데 남편의 신이 바위 위에 있었다. 바위에 올라갔더니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도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이에 부부는 다시 만나고 세오녀는 귀비(貴妃)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日官)은 우리나라에 있던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일본으로 가버려서 생긴 괴변이라 했다. 왕이 일본에 사자(使者)를 보냈더니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했다. 신라에서 그 말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이에 왕은 그 비단을 국보로 삼고 비단을 넣어둔 임금의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했다.(삼국유사)

 

 

 

 

동영상 : 동아일보 자료

'경상북도 > 포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박대통령고향집 방문  (0) 2009.01.07
보경사  (0) 2008.11.18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  (0) 2007.03.27
법광사지  (0) 2007.03.27
오어사  (0) 200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