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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경주교동최씨고택과 경주교동법주

노촌魯村 2009. 1. 23. 14:37

 

 경주교동최씨고택(慶州 校洞 崔氏 古宅 중요민속자료  제27호 )

경주 최씨의 종가로 신라시대 요석궁이 있던 자리라고 전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9대째 대대로 살고 있으며 1700년경 이 가옥을 지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건물 구성은 사랑채·안채·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대문채에는 작은 방과 큰 곳간을 마련하였다. 사랑채는 안마당 맞은편에 있었으나 별당과 함께 1970년 11월 화재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가 현재 사랑채는 복원되어있다. 사랑채터 뒷쪽에 있는 안채는 트인 ㅁ자형이나 실제로는 몸채가 ㄷ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고 ㄱ자형 사랑채와 一자형 중문채가 어울려 있었다. 또한 안채의 서북쪽으로 별도로 마련한 가묘(家廟)가 있는데 남쪽으로 난 반듯한 길이 인상적이다. 안채 뒷편으로 꽃밭이 있어 집 구성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대체로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경주최식씨가옥(慶州崔植氏家屋)이었으나, 경주 최씨가문이 대대로 살아왔던 집이고, 경주의 이름난 부호로 '교동 최부자 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경주교동 최씨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2007.1.29) 하였다(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8,00270000,37&queryText=(`경주교동최씨고택`)<in>(z_title,z_content) )

 

 

  사랑채는 안마당 맞은편에 있었으나 별당과 함께 1970년 11월 화재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가 현재 사랑채는 복원되어있다

 사랑채 앞의 폐석등으로 추정되는 석재(위의 폐탑 옥개석 모양은 최근에 제작한 듯...)

 사랑채에 걸린 현판(용암고택) 

    

‘둔차(鈍次)는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의 부친 최현식의 아호로, '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한다'는 뜻

'대우헌(大愚軒)'은 최준의 증조부 최세린의 아호로 ‘크게 어리석다’는 '대우(大愚)'에서 따온 뜻

 정원에 있는 석조, 폐탑의 석재들

 화재 후 남는 초석들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사진이 ....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1년에 1만 섬 이상 재산은 모으지 말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집에 온 손님은 융숭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가문에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도록 하라

육연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자처초연(自處超然·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대인애연(對人靄然·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한다) ▶무사징연(無事澄然·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진다) ▶유사감연(有事敢然·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한다) ▶득의담연(得意淡然·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한다) ▶실의태연(失意泰然·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경주교동법주를 생산. 판매하는 있는 집

 

 

경주시 교동에서 56년간 교동법주를 빚어 온 배영신 할머니가 있다. 콧속으로 감겨 뻗치는 교동법주의 감미로운 향취와 맛은 배 할머니댁의 뜰에 있는 샘물 로만 술을 빚어야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배 할머니는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교동법주의 기능 보유자이다.

1939년 최씨 집안에 시집온 배 할머니는 시어머니로 부터 술빚기를 배우면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으며 교동법주는 찹쌀과 밀로 만든 누룩 그리고 뜰 샘물로 만든다. 알코올 도수는 19도를 넘는데 지난 90년 알코올도수를 15도 정도로 낮추는 비법을 창안해 국세청 으로부터 면허를 받게 되었다.

법주 제조장의 장독대 우물 옆에는 구기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족히 100년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구기자 뿌리가 샘에 닿아 물맛이 좋다고하여 소중히 다루고 있다.
* 기타 문의사항 : (054) 772 - 5994 (경주시청자료 : http://culture.gyeongju.go.kr/culture/frame.asp?top=/culture/spe/spe_top.asp&left=/culture/spe/spe_left.asp?aa=showList('z3','idImg3');newToggle('idMenu3');showList2('idImgB21');&main=/culture/spe/spe03_01.asp )

 

 옛날의 재벌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지금의 경제규모로 보면 천석이니, 만석이니 하는 것이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 천석꾼은 지금의 준 재벌 정도.. 만석꾼은 대단한 재벌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주 최 부잣집. 9대동안 진사를 지냈고, 12대 동안 만석꾼을 했다는데,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도 삼대를 못 넘긴다는 말이 있는데,어떻게 했기에 경주 최 부잣집은 12대에 걸쳐 부자로 지낼 수가 있었을까요. 최 부잣집에 대대로 내려오던 가훈을 보면,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진사라는 신분은 초시합격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벼슬 이라기보다는 양반 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벼슬입니다. 높은 벼슬을 가지면, 정적이 생기고, 흔드는 사람이 있고,  정쟁에나 휘말려 든다면 멸문지화도 당할 수 있으니, 벼슬은 진사까지만 하라는 뜻이랍니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은 모으지 말라.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재산이 만석 이상 넘었다 싶으면 소작료를 낮추는 방식 등을 통하여 나머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다 합니다.
셋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최 부잣집 1년 소작 수입은 쌀 3천석 정도였는데, 이 중 1천석은 가용으로 쓰고, 1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데 쓰고, 나머지 1천석은 주변 지역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썼다고 한다. 많은 과객들에게 후의를 베풀어 좋은 인심을 얻고, 적을 만들지 않게 됩니다.  

넷째, 흉년이 들면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흉년이 들면 논밭은 싸게 거래되기 마련이고,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기 마련인데 어떻게 남에게 손해를 보이면서까지 논밭을 싸게 매입하겠느냐. 그것도 흉년에 매입한다면 남의 피 눈물로 내 배를 불리는 일이 되는 게 아니겠느냐. 그러니 흉년이 들면 남의 논밭은 절대로 매입하지 말라는 뜻이랍니다.
다섯째,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어라.
근검 절약을 배우고, 생활화 하라는 주문입니다.
여섯째, 사방 100 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 부잣집을 중심으로 사방 100 리라면 경주 일원과, 영천, 울산, 포항에까지 이르는 지역입니다. 사방 100리 안에 굶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집만 배 부른다면 그 원성을 부잣집에서 듣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년 간 3천석의 수입 중 사방 100 리 안에 굶고 있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하여 년 간 1천석의 곡식을 풀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2대를 내려온 만석꾼의 재산마저도 마지막에는 영남대학 재단에 모두 희사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며, 프랑스어로 'Noblesse oblige'로 적게 되며 영어로의 표현은 'The nobly born must nobly do'라고 합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랍니다.


12대, 400년 부자의 비밀(경주 최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