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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성

의성관덕동삼층석탑(義城觀德洞三層石塔).의성관덕동석조보살상

노촌魯村 2009. 6. 8. 22:26

관덕리 사운사 터(觀德里獅雲寺址.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86전)

관덕리 사운사 터의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 석탑과 석조 보살 좌상으로 보건대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사찰의 이름을 명확히 밝혀줄 유물은 없으나, 구전에 따르면 이곳은 산세가 사자가 머리를 서북향으로 하여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사자골’로 부르며, 절의 이름은 사운사(獅雲寺) 혹은 사운사(思雲寺)였다고 한다. 1990년을 전후하여 주변 밭에서 금동 불상 2점이 출토된 적이 있고 지금도 지표상에는 기와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절터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얕은 골짜기의 기슭에 위치한 점으로 보아 규모가 작은 사찰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있는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8호로 지정되었으며, 의성 관덕동 석조 보살 좌상은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의성관덕동삼층석탑 (義城觀德洞三層石塔 보물 188호)

이중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으로, 각 부분의 장식이 풍부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에도 각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오른쪽에는 천부상(天部像)을 배치하였다. 사천왕과 천부상은 모두 부처의 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으로 이들을 이렇게 복합적으로 표현한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인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가져온 변화인 듯 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의 4면에보살상(菩薩像)을 돌아가며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과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젖혀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던 네모난 받침돌만 거꾸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흐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 위로 얹혀있는 돌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위층 기단 윗면의 네 귀퉁이 마다 암수 2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으나 이 중 2마리(보물 제 202호)만 남아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듯 동물을 등장시키는 경우는 경주분황사 모전석탑이 가장 앞서고 이후 통일신라 후기까지 그 양식이 줄곧 이어져 내려왔다. 탑에 장식적인 화려함을 더하게 되는 본격적인 시기인 9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기상은 덜하나, 많은 조각을 새겨 놓아 화려하고 아름답다.(의성군청 자료)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에도 각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오른쪽에는 천부상(天部像)을 배치하였다. 사천왕과 천부상은 모두 부처의 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으로 이들을 이렇게 복합적으로 표현한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인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가져온 변화인 듯 하다.

 

 

 

 1층 몸돌의 4면에보살상(菩薩像)을 돌아가며 새겼다.

 

 

 

 

 

기단부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일정시의 사진

 대구박물관에 보관된 관덕동삼층석탑의 기단위의 석사자(보물 제202호)

 

의성관덕동삼층석탑(보물 제188호)의 기단(基壇) 윗면에 배치되어 있던 네 마리의 사자상 가운데 남아있는 사자상 2구이다. 한 쌍은 1940년에 분실되었고 나머지 한 쌍만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구 모두 조각수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다. 암사자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은 구부린 자세로 앉아있다.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굵은 목에는 구슬목걸이가 남아 있어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장식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 밑에 세 마리의 새끼 사자가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어미젖을 빨고 있는 희귀한 모습이다. 수사자는 암사자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향하고 있어 암수가 서로 마주보는 배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성연대는 의성관덕동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인 9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세부의 수법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양쪽 발과 앞가슴의 근육 등에서 힘찬 조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암사자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은 구부린 자세로 앉아있다.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굵은 목에는 구슬목걸이가 남아 있어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장식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 밑에 세 마리의 새끼 사자가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어미젖을 빨고 있는 희귀한 모습이다.

 

 

 

관덕동 삼층석탑 앞에 놓인 바위(배례석으로 추정됨. 안상문이 조각되었있습니다.)

 

의성관덕동석조보살상(義城 觀德洞 石造 普薩像)

 

 

의성관덕동석조보살좌상(義城觀德洞石造菩薩坐像 문화재청 자료 사진)

이 불상< 佛像 >은 관덕동< 觀德洞 > 석탑< 石塔 >(보물 제188호)와 함께 남아 있던 높이 98cm의 신라< 新羅 > 석불좌상< 石佛坐像 >이다. 목 부분이 절단되었고 대좌< 臺座 >, 광배< 光背 > 등이 보이지 않지만, 조각 솜씨가 뛰어난 8세기 중엽의 불상으로 생각된다. 팽이 같은 육계< 肉 >, 눈의 마멸로 인상이 불분명하지만 갸름한 얼굴에 표현된 유연한 탄력,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신체에 나타난 안정감, 얇은 통견의< 通肩衣 > 속으로 비치는 부드러운 굴곡 등은 8세기 신라 불상의 양식적< 樣式的 >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신라기< 新羅期 >의 석불상< 石佛像 > 연구< 硏究 >에 귀중한 자료의 하나로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