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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양계정사(暘溪精舍)

노촌魯村 2009. 8. 6. 12:44

 

 

 

 

 

 

 양계정사(暘溪精舍 민속자료 제88호)

인조 23년(1645)에 양계 정호인(鄭好仁)이 관직에서 일시 향리로 돌아와겨관이 좋은 현 위치로 초가 수칸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여 주자서와 근시록을 연구하던 학당이였다. 선생의 호는 양계, 관은 오천이며 임진왜란시 영천의병장을 지낸 호수 정세아 선생의 손자이다. 조선인조 5년(1627)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호조 정량을 거쳐 양산, 합천군수가 되고 진주목사와 남원도호부사를 지냈다. 현재건물은 양계정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00년대에 후손들이 지은 건물이다. 우거진 숲과 기암괴속으로 둘러싸인 양계정사는 고현천을 부감하는 언덕위에서 서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조선후기의 之자형의 특이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정호인(鄭好仁 1597-1654)
자는 자견(子見)호는 양계(暘溪)본관은 오천(烏川)이다. 1618년 진사에 뽑히고 1627년 진사에 뽑히고 1627년 문과에 올라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떄 공이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향병을 모집하는데 종사하여 도왔고 1637년 이후 1645년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주군(州郡)의 수령(守令)이 되었으나 사퇴하고 돌아왔다. 돌아올 때에는 행장이 씻은 듯이 간단하며 다만 서책만두어짐 있을 뿐이었다. 만년에는 사환에 뜻이 없어 주자서와 근사록 등의 책을 취하여 잠심탐구하여잠시라도 서책을 놓지 않았다. 사후에 대구 청호서원에 배향했다.(영천시청 자료)

 양계정사(暘溪精舍) 현판

 

 

 

 

 

 

 

 

 

 

 

 양계정사(暘溪精舍)에서 본 들판

우거진 숲과 기암괴속으로 둘러싸인 양계정사는 고현천을 부감하는 언덕위에서 서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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