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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첨백당

노촌魯村 2009. 9. 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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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백당(문화재자료 제13호.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979 )

 동구 불로동의 입구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 정도 올라가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좁은 길이 있다. 이 좁은 길을 지나면 확 트인 넓은 평야에서 세거를 이루고 있는 평광동이 있다. 이 동네 안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한 검물이 단양우씨의 재실인 첨백당이다.  당초 이 건물은 효자로 이름났던 우효중(禹孝重)의 효행을 널리 알이는 것은 물론 조선조 말 벼슬도 버린 채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안타까워하며 향리에 묻혀살던 선비 우명식(禹命植)의 절의를 기리고, 인근에 거주하는 단양 우씨의 자녀교육을 위해 1896년(고종 33) 후손들이 세운 건물로 1924년 중수하였다. 당호를 '첨백당'이라 한 것은 우명식의 묘소가 있는 '백전골(柏田谷)을 우러러 보는 집'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건물은 앞쪽의 넓은 마당과 배후의 야산을 의지하고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앞쪽으로는 건물을 지을 때 같이 심었다는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소나무, 은행나무 등이 건물과 조화를 잘 이루고 뒷동산의 울창한 대나무 숲이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건물의 정면 중앙부 5칸은 맞배지붕이고 양 협칸은 각각의 박공면에 내림지붕을 달고 있다. 평면은 중앙부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죄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있다.(대구동구청 자료)

 

 

 첨백당 현판

 

 

 

 가선대부우공명식사적비

 보호수 은행나무

조선 고종 33년(1896) 선비 우명식과 효자 우효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첨백당내에 은행나무를 심었고, 소나무는 광복을 기념하여 심어졌다고 함,

 보호수 은행나무

 보호수 소나무

 평광동의 비석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