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유림의 오랜 숙원사업인 용암서원을 선생이 태어나 학문에 정진하셨던 삼가면 토동마을에 복원해(2007년 4월 26일) 용암서원에서 심의조 합천군수, 김연 용암서원 복원 추진위원장, 유도재 군의회의장, 이현재 전국무총리 및 유관기관단체장과 군민 등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기념 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용암서원은 4년간 사업비 16억원을 투입해 6534㎡의 부지면적에 숭도사, 전사청, 내삼문, 용암서원, 존성재, 한사재, 집의문, 관리사 등을 복원했다.
을묘에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올림 상소문
삼가 생각하건대, 선왕(先王)께서 신의 변변치 못함을 모르시고 처음에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심에 미쳐서는 두 번씩이나 주부(主簿)에 제수하시었고, 이번에는 또 현감(縣監)에 제수하시니 두렵고 불안함이 산을 짊어 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한번 대궐에 나아가서 천은(天恩)에 사례하지 못하는 것은, 임금이 인재를 취하는 것은, 장인(匠人)이 심산 대택(深山大澤)을 두루 살펴 재목이 될 만한 나무를 빠뜨리지 않고 다 취하여다가 큰 집을 짓는 것과 같아, 대장(大匠)이 나무를 구하는 것이고 나무가 자발적으로 쓰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 인재를 취하는 것은 임금된 책임이고 신이 염려할 바가 아니므로 그 큰 은혜를 감히 사사로운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면서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마침내 측석(側席) 밑에서 감히 주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나아가기 어렵게 여기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신의 나이가 60에 가까왔으나 학술(學術)이 거칠어 문장(文章)은 병과(丙科)의 반열에 뽑히기에도 부족하고 행실은 쇄소(灑掃)하는 일을 맡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과거를 구한 지 10여 년에 세 번이나 낙방하고 물러났으니 당초부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설사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좁은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고 크게 일할 수 있는 온전한 인재는 아닌데, 더구나 사람의 선악이 결코 과거를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에이겠습니까.
미천한 신이 분수에 넘치는 헛된 명성으로 집사(執事)를 그르쳤고 집사는 헛된 명성을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는데, 전하께서는 과연 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한 자가 반드시 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도가 있는 자가 반드시 신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전하께서만 모르신 것이 아니라 재상(宰相)도 모른 것입니다. 그 사람 됨됨을 알지 못하고 기용하였다가 뒷날에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그 죄가 어찌 미천한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는 것보다는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은 차라리 제 한 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를 저버리지 못하겠으니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전하의 국사(國事)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하여 천의(天意)가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1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이 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중에 충의(忠義)로운 선비와 근면한 양신(良臣)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형세가 이미 극도에 달하여 미칠 수 없으므로 사방을 돌아보아도 손을 쓸 곳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소관(小官)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주색(酒色)이나 즐기고, 대관(大官)은 위에서 어물거리면서 오직 재물만을 불립니다.【이 말은 당시의 병통을 바로 지적한 것이다. 오늘날 공도(公道)는 쓸어버린 듯이 없어졌고 사문(私門)이 크게 열려, 떼지어 쫓아다니는 자는 공사(公事)를 받들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일삼으면서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세월을 보내며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모르니, 통탄스럽다. 조식(曺植)은 초야(草野)의 일사(逸士)로서 한때의 고명(高名)이 있었는데, 비록 부름을 받고 나아간다 하더라도 어찌 해 볼 수가 없음을 스스로 알았다. 이 때문에 소(疏)를 올려 진언(進言)하면서 당시의 폐단을 절실하게 비판하였으니, 또한 강직하지 않은가.】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으며, 내신(內臣)은 후원하는 세력을 심어서 용(龍)을 못에 끌어들이듯이 하고,【이것은 이리와 승냥이 같은 무리가 정권을 잡고 있다는 뜻인데, 그 말의 뜻이 은미하고도 심장하다.】 외신(外臣)은 백성의 재물을 긁어들여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이 하면서도, 가죽이 다 해지면 털도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길게 탄식하며 낮에 하늘을 우러러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한탄하고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밤에 멍하니 천정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寡婦)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先王)의 한낱 외로운 후사(後嗣)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千百)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億萬) 갈래의 인심(人心)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낙동강 상류가 끊긴 것을 말하는데, 갑인년 겨울에 이런 변고가 있었다.】 곡식이 내렸으니[雨粟]【근래 몇년 동안 이런 재변이 있었다.】 그 조짐이 어떠합니까? 음악 소리가 슬프고 흰옷을 즐겨 입으니【당시의 음악소리가 애절한 것이 많고, 복색(服色)은 흰 것을 숭상한 것을 말한다.】 소리와 형상에 조짐이 벌써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당해서는 비록 주공(周公)․소공(召公)과 같은 재주를 겸한 자가 정승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초개 같은 한 미신(微臣)의 재질로 어찌하겠습니까? 위로는 위태로움을 만에 하나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털끝만큼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니 전하의 신하가 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변변찮은 명성을 팔아 전하의 관작을 사고 녹을 먹으면서 맡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또한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둘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이 보건대, 근래 변방에 변이 있어 여러 대부(大夫)가 제때에 밥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은 이를 놀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은 20년 전에 터졌을 것인데 전하의 신무(神武)하심에 힘입어 지금에야 비로소 터진 것이며 하루 아침에 생긴 사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소 조정에서 재물로써 사람을 인용하여 재물을 모으고 백성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이에 마침내는 장수로서 적합한 사람이 없고 성(城)에는 군졸(軍卒)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적들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이 들어온 것이 어찌 괴상한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대마도(對馬島)의 왜(倭)가 적왜와 몰래 결탁하고 안내하여 만고(萬古)토록 무궁한 치욕을 끼친 것인데, 왕령(王靈)을 떨치지 못해서 담이 무너지듯 패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구신(舊臣)을 대우하는 것은 주(周)나라 법보다도 업격하면서【아마도 남정(南征)한 장사(將士)에게 형(刑)을 준 것을 지목한 듯하다.】 구적(寇賊)을 총애하는 은덕은 도리어 망한 송(宋)나라보다 더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세종 대왕께서 남정하시고 성종 대왕께서 북벌(北伐)하신 일로 보더라도, 어느 것이 오늘날의 일과 같았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피부에 생긴 병에 불과하고 심복(心腹)의 병통은 못 됩니다. 심복의 병통이란 결리거나 맺히며 찌르거나 막혀 상하(上下)가 통하지 못하는 것이니, 바로 이럴 때에 경대부(卿大夫)가 목구멍이 마르고 입술이 타도록 분주하게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왕병(勤王兵)을 불러 모으고 국사(國事)를 정돈하는 것은, 구구한 정형(政刑)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의 한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노심초사하여 큰 공을 세우는 그 기틀도 진실로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는 무슨 일입니까?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 쏘기와 말 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존망(存亡)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날 척연히 놀라 깨닫고 분연히 학문에 힘을 써서 홀연히 덕(德)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을 수 있다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 속에는 만 가지 착함이 갖추어지고 백 가지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균평(均平)하게 할 수 있고 백성도 교화시킬 수 있으며 위태로움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요체(要諦)를 보존한다면 거울은 그대로 비추지 않음이 없고 저울은 공평하게 달지 않음이 없으며 생각은 사특함이 없을 것입니다.
불씨(佛氏)의 이른바 진정(眞定)이란 것은 다만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일 뿐이니,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는 데 있어서는 유교(儒敎)와 불교(佛敎)가 한 가지입니다.【조식의 이 말은 잘못이다. 불씨의 학설(學說)에 어찌 위로 천리를 통달하는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인사(人事)를 행하는 데 있어 실지를 실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유가(儒家)가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도(佛道)를 좋아하십니다. 만약 불도를 좋아하는 마음을 학문을 좋아하는 데로 옮기신다면 이는 우리 유가의 일이니, 어찌 어렸을 때에 잃어버렸던 아이가 제집으로 돌아와서 부모․친척․형제․친구를 만나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정사(政事)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것은 도(道)로써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등용하는데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하실 것 같으면 유악(츋幄) 안에 있는 사람치고 사직(社稷)을 보위(保衛)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소신 같은 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헛된 명성만으로 등용한다면 잠자리[칍席] 밖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주변 없는 소신 같은 자가 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뒷날 전하께서 덕화를 왕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신다면 신도 마부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임금을 섬길 날이 어찌 없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을 삼으셔서 지극한 이치를 세우도록 하소서. 지극한 이치가 지극한 이치로서의 구실을 못하면 나라는 나라로서의 구실을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예찰(睿察)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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