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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백제 부활을 알리는 능사(陵寺)

노촌魯村 2011. 4. 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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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상

                           

 백제문화단지에 조성된 능사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서 1993년에 발굴된 사찰로 일반 사찰과 달리 능(陵)을 수호하고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며 왕이 제를 지내던 사찰이다.

사지에서는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 창왕명석조사리감 등이 출토되었으며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총 사업비 210억 원을 들여 7년간에 걸쳐 복원됐다.
능사는 금당과 강당, 중문, 5층목탑, 익사, 회랑 등 총 13동으로 이뤄졌으며 부여 금성산 출토 청동소탑 유물과 국내 최고 목조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및 중층 건물인 화암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 등을 참고하여 재현했다.
대표적인 건물은 5층 목탑이다. 목탑은 정면 3칸, 측면 3칸, 연면적 53㎡, 높이 37.5m의 초대형 규모로, 이중 상륜은 높이가 9m에 이른다. 국내 최초로 지어지는 백제 목탑으로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하고 백제만의 건축양식인 하앙식(下昻式) 공법을 적용한 국내 최초로 지어진 유일한 백제시대 목탑이다.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극락전 외부 귀공포 

화암사 극락전 외부 전면 공포    

완주 화암사 극락전(完州 花巖寺 極樂殿.보물 제663호.2011.경주세계문화엑스포.도편수 김범식의 우리 건축에서)

                  

                                                                         

 

                  

 

 

                   

                   

 백제문화단지 내에 조성된 능사 개원법회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등 2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했다.(2010.9.11)

목탑은 정면 3칸, 측면 3칸, 연면적 53㎡, 높이 37.5m의 초대형 규모로, 이중 상륜은 높이가 9m에 이른다. 국내 최초로 지어지는 백제 목탑으로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하고 백제만의 건축양식인 하앙식(下昻式) 공법을 적용한 국내 최초로 지어진 유일한 백제시대 목탑이다.

                                

                                              

                      

               

                     

 심주

 

부여능산리사지(扶餘陵山里寺址.사적 제434호.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 외)

능산리 절터는 부여능산리고분군(사적 제14호)과 부여나성(사적 제58호) 사이에 위치한 백제시대 절터유적으로, 1992년부터 2000년까지 6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된 이른바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의 전형적인 백제 가람형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993년 이 절터 내의 공방(工房)으로 생각되는 건물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출토되어 백제의 높은 금속공예기술 수준과 예술 역량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향로와 함께 출토된 '백제창왕명사리감(국보 제288호)'에는 사리를 모신 때와 공양자 및 절이 세워진 연대를 알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매우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사리감에 새겨진 기록으로 보아 이 절은 왕실에서 지은 국가 사찰로 왕릉으로 추정되는 능산리고분군에 축원을 빌기 위한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창건연대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역사학과 건축공학, 고고학, 미술사학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국보 제288호.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로, 능산리 절터의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나왔다. 출토 당시 이미 사리감은 폐기된 상태였으므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높이 74㎝, 가로·세로 50㎝인 터널형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 정도로 파내어 턱을 마련하였는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감실의 좌·우 양 쪽에 각각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풍의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는데, 명문(銘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 정해매■공주공양사리(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로서, 이 사리감은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 졌으며, 성왕(聖王)의 따님이자 창왕(昌王)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새로운 금석문 자료로서 백제와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며,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 절터로서는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작품이다.(출처:문화재청)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국보 제287호.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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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백제전 개막현장을 가다

1400년 전 백제의 부활, 백제문화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