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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해인사 길상탑(海印寺 吉祥塔)

노촌魯村 2011. 5. 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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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길상탑(海印寺 吉祥塔.보물 제1242호.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이 탑은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전형양식을 갖춘 탑으로 이중기단을 지니고 있는데 상층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낮고 넓어서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받침은 각각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이상이 결실되었으나 노반(露盤)에 지름 5.2㎝ 정도의 찰주(刹柱)를 꽂았던 원형구멍이 남아 있다. 1966년 탑지(塔誌)와 소탑(小塔)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소탑(小塔)이 157개 있으나 완전한 수량이 아니다. 이는 이 탑의 건립이 탑지(塔誌)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 유행한 조탑경(造塔經)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 의거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소탑(小塔)은 원래 99개, 77개가 안치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망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매의 탑지(塔誌)는 23㎝의 정방형으로 두께 22.4㎝의 검은 전판(塼板)으로 만들어졌는데 명문은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찬(撰)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건영(乾寧) 2년(신라 진성여왕 8, 895)을 전후한 7년에 걸쳐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창궐한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기 위해 힘쓰다 희생된 승속(僧俗)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높이, 공장승(工匠僧), 탑 안에 납입한 법보(法寶)의 내용 및 탑을 건립하는 데 소용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一丈三尺)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相輪部)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唐尺)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度量衡)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塔誌)의 기록에 따라 석탑 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 등은 당시의 사원경제(寺院經濟) 연구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 말기 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합천군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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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사찰 해인사를 지킨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