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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

노촌魯村 2011. 5. 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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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명승 제 53호.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화강암 암반으로 깊고 긴 계곡과 주변 임야가 어우러져 있으며, 화강암 반석 위를 흐르는 한가운데 자리한 거북 모양의 커다란 바위는 그 경관을 더욱 탁월하게 만든다. 거대한 바위가 있어 더욱 신비감을 느끼게 하며 바위를 중심으로 양편에 구연서원과 요수정이 있어 명승의 풍광과 격조를 더욱 높여준다. ‘수승대’의 명칭은 16세기 중반 수승대에 가까운 마을을 잠시 방문한 퇴계 이황이 ‘수송대(愁送臺)’의 명성을 듣고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면서 ‘수승대(搜勝臺)’로 이름을 바꾸자고 시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 장소에 연고를 가진 갈천 임훈이 완곡하게 원래 이름 수송대 그대로가 좋다는 화답시가 알려지면서 수승대의 성가는 높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 지역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사신이 다니던 길이 되었던 까닭에 사신을 근심스럽게 송별하는 모임을 가졌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수송대라 한 것이라 한다.(거창군청 자료)

수승대에서 명물은 역시 거북바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위의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승대로 이름을 고칠 것을 권유한 이황의 사율시 등이 바위에 가득 새겨져 있고 특이하게 소나무들도 바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구연서원  

      구연서원 관수루     

 

 

관수 루 옆 바위 위의 성혈             

 

 

 

 

 

 

 

 

 

 

            

 

 

 

 

 

 

 

 

 

 

 

 

 

 

                 

요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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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愼權)에 대하여

1501년(연산군 7)∼1573년(선조 6) 12월 23일.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언중(彦仲), 호는 요수(樂水). 선교랑(宣敎郞) 훈도(訓導)를 지냈다.
학행이 있었다. 안의(安義)야담(夜潭)에 살았다. 구암(龜岩) 이정(李楨)
, 갈천(葛川) 임훈(林薰)
과 여러 날 학문을 강마하다가 더러는 시를 주고 받기도 하였다.
인조 연간에 후손 신경직(愼景稷)성팽년(成彭年)의 후손 성경창(成慶昌) 등과 함께, 신권이 1540년(중종 35)에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던 향교 근처에 사우(祠宇)를 건립하여 신권·성팽년을 향사하였는데, 1694년(숙종 20)에 구연서원(龜淵書院)으로 명명되었다. 이 서원은 현재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9번지에 있다.  묘는 안의현 초점(草岾) 선영(先塋) 아래에 있다.
(居昌愼氏世譜)


 

수승대라 대 이름 새로바꾸니

봄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라

먼 숲 꽃망울은 터져오르는데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좋은경치 좋은사람 참지를못해

 가슴속애는 회포만 쌓이는구려

수승대라 대 이름 바꾸니

 봄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다

- 퇴계 이황 -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가는데

대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좋은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두고

구름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어둡니다

깊은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속세에 흔들리며 좋지 못해도

홀로 벼랑가 늙은 소나무에 기대봅니다

- 요수 신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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