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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면(伽倻面) 야천리(倻川里) 반야사지에 있던 것을 해방 후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사고(寺庫)에 보관하다가 1968년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陜川 般若寺址 元景王師碑.보물 제128호.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9, 산1-1)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고려 인종 3년(1125)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 참고로 元景王師 樂眞의 생몰연대에 대한 의견은 대략 3가지 정도가 있다.
1. 葛城末治 설(조선금석고) : 1050-1119
2. 李弘稙 설(국사대사전, 한국인명대사전) : 1045-1114
3. 許興植 설(한국사 연구 35) : 1048-1116
비신의 전면 상부에 전서(篆書)로 「증시원경왕사비명(贈諡元景王師碑銘)」이라고 쓰여 있다.
비문은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李元符)가 썼으며, 뒷면에는 문도들의 직명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신라의 기본형태에서 벗어난 형태로 귀부의 중곽갑문과 아울러 생경한 문양표현, 옥개형으로 변한 개석 등 고려 중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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