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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노촌魯村 2011. 9. 4. 16:01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보물 제6호.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9-3)

고달사터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90세로 입적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이름을 ‘혜진’이라 내리었다.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으며, 비몸은 깨어진 채로 경복궁으로 옮겨져 진열되어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격동적이고, 발톱의 사실적 표현은 땅을 꼭 누르고 있는 듯하다. 목은 길지 않아 머리가 등에 바짝 붙어 있는 듯 하다. 등에는 2중의 6각형 벌집 모양이 정연하게 조각되었으며,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첨가하여,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돌출시켜 놓았다.
머릿돌은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고,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의 머리가 험상궂은 용의 머리에 가깝고,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비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특히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의 번잡한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진전되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

 

 

 

 

 

 

 

 

 

  

   

 

    

1972년 고달사지의 원종대사탑비 상태

고달사지(위의 모든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신라 이래 삼원(왕실의 비호를 받는 부동사원(不動寺院)) :

고달원(高達院)·희양원(曦陽院)·도봉원(道峰院) 

 

희양원(曦陽院)은 경북 문경의 봉암사를 중심으로 한 희양산문(曦陽山門)

도봉원(道峰院)은 도봉산의 영국사(寧國寺 : 現 도봉서원 자리)

고달원(高達院)은 여주 고달사

 

[비문]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高達寺 元宗大師慧眞塔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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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史 바로가기 :http://history.yj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