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충남

사자루 (泗泚樓).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

노촌魯村 2011. 11. 17. 10:18

아래 모든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사자루 (泗泚樓.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으로, 이곳은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 순조 24년(1824)에 군수 심노승이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이었던 배산루를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 짓고는 사자루라 이름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오른편 북쪽 칸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의친왕 이강이 쓴 ‘泗泚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백마강 쪽으로는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泗泚樓는 사방이 트여있는 높은 곳에 있어 부여의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누각이다. 건물을 옮겨 세우기 위해 땅을 고를 때정지원’이라는 이름을 새긴 백제시대 금동 석가여래 입상  이 발견되어 더욱 주목받는 장소이다. (문화재청 자료)

 

건물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의친왕 이강이 쓴 ‘泗泚樓(사자루 :물이름 사.泚:맑을 차(사.체))’현판

 

 

 

 

 

 

 

 

 사자루에서 본 백마강

 

 사자루와 백화정 사이의 연리지

 

    

위의 모든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보물 제196호.국립부여박물관)

하나의 광배에 불상·보살상을 함께 주조한 삼존불(三尊佛)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배(光背)의 뒷면에는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죽은 아내를 위하여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저승길을 잘 가게 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본존불의 얼굴은 갸름하면서 살이 오른 모습으로 눈·코·입의 윤곽이 큼직해서 시원해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U자형의 주름을 지으면서 묵중하게 흘러내렸는데, 양 팔에 걸친 옷자락은 새의 날개깃처럼 양 옆으로 길게 뻗쳐있다. 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끝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의 양쪽 끝에는 합장하고 있는 두 협시보살이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수법이며 길게 날리고 있는 옷자락은 광배의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다.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만 남아 있고 신체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광배 위에는 연꽃속에 앉아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작은 부처 1구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조각양식이나 표현 수법이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과 같은 계통으로 중국 북위시대에 유행한 불상양식을 수용한 것이다. 금동계미명삼존불(국보 제72호)이나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과 같은 양식에 속하지만 그보다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고 무늬가 간략화 되었으며 조형적인 탄력도 많이 감소되었다. (문화재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