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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재약산 표충사 (載藥山表忠寺)

노촌魯村 2011. 12. 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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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충루(酬忠樓)

표충사의 정문으로써 밀양시 교동에 소재한 "밀양향교의 정문인 풍화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소재한 "예림서원의 정문인 독서루"와 양식이 같다.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입니다. 이는 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表忠寺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재약산 표충사 (載藥山表忠寺.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터를 잡아 세운 죽림사(竹林寺)이다. 흥덕왕 4년(829) 셋째 왕자가 몹쓸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의 약수를 먹고 병이 낫게 되자 탑을 세우고 약수 이름을 영정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영정사라 부르고 절을 크게 부흥시켰다. 신라 때는 보우국사가, 고려시대 때는 해린국사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특히 일연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고 한다. 조선 헌종 5년(1839)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명대사의 사당을 이곳에 옮기면서 표충사라 하였는데, 이 사당을 절에서 관리하면서 사(祠)자가 사(寺)로 바뀌었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평양 탈환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신으로 임명되어 여러 차례 적진에 들어가 회담을 했고, 그 성과로 포로로 잡혀간 3003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현재 이곳에는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당의 영정을 함께 모시고 있다.
주위의 뛰어난 경관뿐 아니라 불교와 유교가 통합되어 있는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보여 주는 곳이다.(문화재청 자료) 

 

 

 

 

영사각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람각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교적 건물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각(滌珠閣)과 같은 용도의 건물입니다.

봉청필추가람신위(奉請伽藍神位)

봉청(奉請) : 奉(받을봉) 請(청할청)

필추(苾:향내(향기)-필. 芻:꼴(건초)-추.  필추苾芻:승려 비구)는 인도말로 스님을 뜻하는 비구(比丘).

가람(伽藍)은 절

필추가람 신위(苾芻伽藍神位)가????

말 그대로 하면 비구 곧 「남자스님절」 지키는 신위(神位)

필추가람(苾芻伽藍)이- 먼저 가신(영가) (남)스님(들)이 지켜준다는 뜻인가^^???

가람각(伽藍閣)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람각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교적 건물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각(滌珠閣)과 같은 용도의 건물입니다.

 

나무가람수호신위(南無伽藍守護神位)

나무(南無) :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 믿고 받들며 순종함을 이르는 말. 부처나 보살들의 이름 앞에 붙인다.

가람(伽藍)은 절

그러면

봉청필추가람신위(奉請伽藍神位)와 나무가람수호신위(南無伽藍守護神位)는 같은 뜻 ??? ^^^

사당 영역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 서산대사.기허대사의 진영을 모신 유교식 사당

표충서원

 

표충사(表忠祠)

1839년(헌종 5)에 이건하면서 대광전 옆 지금의 팔상전이 있는 곳에 위치해 표충서원이란 이름으로 있었으나 이후 1971년 팔상전과 자리를 바꾸었으며, 최근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 표충사라고 편액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여느 전각들과는 달리 전면의 한 칸 퇴를 물려 방을 들인 것이 이채롭다. 내부에는 사명대사ㆍ서산대사ㆍ기허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사당영역

사천왕문

 

 

삼층석탑 영역

사당영역을 지나 사천왕문(표충사 경내로 들어서는 세변째 관문)을 지나면 비로소 사찰 공간이 나온다.

   

삼층석탑 영역

대광전 영역

영정약수 옆 계단을 지나면 규모가 크고 연륜이 가득한 여러 동의 전각이 있는 대광전 영역

영정약수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지금도 이 영정약수를 찾는 발길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광전 영역

대광전 영역

승탑 영역

 

 

 

효봉대종사 천진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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