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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자규루 및 관풍헌 (子規樓 및 觀風軒)

노촌魯村 2012. 4. 29. 18:11


자규루  및관풍헌 (子規樓 및 觀風軒.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84-3및 984-1)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르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세종 10년(1428)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리웠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누각이름을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그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문화재청 자료)

 

자규루는 관풍헌과 더불어 옛 객사 근처의 건물로, 관풍헌에서 동쪽으로 약 7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누각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1단의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사용한 중층문루인데 좌측 첫째 칸에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영월군수 신숙근이 세종 10년(1428)에 창건하여 매죽루라고 칭하였으나, 후에 단종이 이곳 객사에 거처하면서 누각에 올라 자신의 고뇌를「자규사」 및「자규시」로 읊은 것이 계기가 되어 누각의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누각은 선조 38년(1605)의 대홍수로 인하여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되었는데, 강원도관찰사 윤사국(1728-1809)이 정조 15년(1791)에 영월을 순찰할 때 옛 터를 찾아 중건하고 단종의 시를 봉안하였다. 관풍헌은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서 영월읍 중앙로에서 동강1교 방향으로 약 70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건물은 태조 1년(1392)에 객사와 함께 건립되었다. 세조 2년(1456) 6월 28일,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홍수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와 머물던 중에 세조의 명으로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과 공생 화득의 교살에 의해 1457년 10월 24일 사사된 곳이라고 한다. 관풍헌이 있는 객사의 정문을 백운루(《강원도지》에는 관풍루라고 표기함》)라 하였다.(

(영월군청 자료) 

 

 

 

 

 

 

 

 

 

 

月白夜蜀魂湫 달 밝은 밤 두견새 두런거릴 때

含愁情依樓頭 시름 머금고 누대에 기대노라니

爾啼悲我聞苦 네 울음 슬퍼서 듣는 나 괴롭구나

無爾聲無我愁 네 소리 없다면 내 시름 없으련만

寄語世上勞苦人 세상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愼莫登春三月子規樓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