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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포항

우암 송시열 선생 사적비 (尤庵 宋時烈 先生 事蹟碑)

노촌魯村 2012. 5. 1. 09:55

 

우암송시열선생은 17세기 국정운영의 중책을 맡았던 실력자요 국노(國老)로서 한국 역사속에 우뚝 선 거목입니다. 선생은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 해 전심전력을 경주했던 성리학자이면서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남인(南人)의 집권 과 동시에 조정에서 실각하여 덕원(德源)에 정배되었다가, 조선조 숙종 원년 단기 400 8년 서기 1675(우암69세)년 윤5월에 이곳 장기현에 옮겨와 6월 11일에 위리안치(圍籬 安置)되어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숙종 5년 1679(우암73세)년 4월 10일에, 그 동안 정착했던 사관(舍館)안에 홀연히 자생한 느티나무를 베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죽교(竹轎)에 올라 거제도(巨濟島)로 이배(移配) 장기를 떠났습니다. 우암이 장기에 유배 올 때 동생 시도(時燾), 시걸(時杰)과 부실(副室) 및 노복(奴僕)들을 대동 했으며, 도착 즉시 마산촌(馬山村)에 붕실(鵬室)을 정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들 기 태(基泰)와 손자 주석(疇錫) 그리고 증손 일원(一源)과 유원(有源)도 합류하여 함께 생 활했습니다. 당시 마산촌 주인은 사인 오도전(士人 吳道全)이었는데, 4년 동안 우암( 尤庵)에게 수학하여 향교(鄕校)의 훈장이 되었고, 서유원(徐惟遠) 역시 끝까지 선생의 문하에 출입하여 훈도를 받았으며, 장기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은행나무도 우암이 심 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우암이 장기를 떠난 후 29년되는 해에 죽림서원(竹林書院) 창건이 논의되었고, 이를 주도한 오도종(吳道宗), 이석증(李 碩增), 황보헌(李碩增) 이동철(李東哲) 한시유(韓是愈) 등의 사인들과, 우암의 장기 유 배생활에 대한 실상을 후세에 기록으로 전해준 김연(金璉) 오도징(吳道徵) 이유(李瑜 ) 오시좌(吳時佐) 민종대(閔宗大)등도 기억되어야 할 분들입니다. 그러나 죽림서원은 아쉽게도 우여곡절 끝에 지금 폐허화되어 무심한 죽림만 우거져 있습니다. 우암이 장기에 귀양온 것은 우암에게는 불행인지 모르지만, 당시 장기와 장기인들 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이 무렵 장기인들은 우암을 통하여 유학(儒學)의 진수와 중 앙정계의 동향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접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장기에 우암 인맥(人脈)이 형성되었으며 아울러 궁벽한 해곡(海曲)이 예절을 숭상하는 유향(儒鄕) 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암은 장기에서 [朱子大全箚肄: 주자대전차이] 와 [二程書分類: 이정서분류]등의 명저를 저술했고 취성도(聚星圖)를 완성했으며, 정 포은선생신도비문(鄭圃隱先生神道碑文)을 비롯한 많은 양의 시문(詩文)도 창작했습 니다. 유배기간 중 우암을 뵙기 위해 조야상하(朝野上下)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우 리 고장을 방문했습니다. 특히 명제(明齊), 윤증( 尹拯)과 장기에서의 만남은 노론 (老論),소론( 少論) 분당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기 체류중 부인 이씨(李氏)의 상을 당하여 멀리서 통곡했으며, 장녀의 부음(訃音)을 듣고 애통 해 하기도 했습니다. 우암이 우리 고장에 끼친 음덕에 대해서 오랫동안 장기인들은 잊지 않고 있었지만, 가시적인 기념물 하나도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하여 장기발전연구회(發展硏究會)에서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의 격려와 협조에 힘입어 우암선생의 사적비를 세우면서, 장기에서의 심회를 읊은 시 한 수를 번역하여 함께 실어 그 업적을 삼가 기리는 바입니다.
辛巳年(서기2001) 11月 10日 [신사년(서기2001) 11월 10일]

月城 李敏弘 謹撰(월성 이민홍 근찬)
安東 金洋東 謹書(안동 김양동 근서)
尤菴宋時烈先生事蹟碑建立推進委員會 謹竪
(우암송시열선생사적비건립추진위원회 근수)

자료 출처 : 포항시 장기면사무소 자료에서

 

 

示孫兒輩(시손아배) 여러 손자들에게

 

聖德寬臣罪(성덕관신죄) 임금님 성덕 신하의 죄에 너그러워
朱炎自北移(주염자북이) 여름 날 북에서 이곳으로 옮겨주셨네
三時梳短髮(삼시소단발) 빗질할 때마다 머리는 짧아지는데
五月在長(오월재장기) 장기에 온 지도 다섯 달이 되었구나
書展茅讀(서전모첨독) 초가 처마 아래 책 펴놓고 읽으며
心傷杞國危(심상기국위) 마음은 부질없이 나라일 걱정한다.
汝曺休咎怨(여조휴구원) 너희들은 이를 탓하고 원망하지 말게나
生死匪人爲(생사비인위) 생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인 것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심은 은행나무

                              

청주박물관소장

 

청주박물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