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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포항

한흑구문학비(韓黑鳩文學碑)

노촌魯村 2011. 8. 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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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흑구 선생(한세광. 1909-1979)은 평양에서 태어나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미국으로 망명한 아버지 한승곤의 영향으로 1929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유학시절부터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되는 '대한민보'와 국내 문예지 '동광' 등의 매체에 여러 편의 시와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필명을 널리 알렸고 1934년 평양으로 돌아와 전영택과 함께 '대평양'을 창간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1939년 '흥사단 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 이후 일제의 강력한 협박과 회유에도 친일 문학에 손을 대지 않은 그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종국은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라고 높이 사기도 했다.

1945년 월남한 뒤 미군정청 통역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1948년 포항으로 이주해 197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포항 1대학 전신인 포항수산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초창기 영문학 소개를 비롯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수필가로 활동했다.

한 선생은 1931년 '동광' 지에 단편소설 '황혼의 비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시, 소설, 수필, 평론, 미국 문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대보면 보리밭에서 시상을 얻은 '보리'라는 수필로 1960년부터 1970년 까지 중등 국어교과서에 수록되며 필력을 인정받았다. 저서로는 현대미국시선과 수필집 '동해산문', '인생산문' 등이 있다.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논과 밭에는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다.

차가움이 엉긴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로 낱낱이 부숴 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 속에 묻고, 이제 늦은 가을의 짧은 해도 서산을 넘은지 오래고, 날개를 자주 저어 까마귀들이 깃을 찾아간 지도 오랜, 어두운 들길을 걸어서 농부는 희망의 봄을 보릿속에 간직하며, 차가운 허리도 잊고 집으로 돌아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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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보리"의 한부분

 

 

한흑구문학비의 위치(보경사와 서운암 사이. DAUM지도 스카이뷰에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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