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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천진궁 (天眞宮)

노촌魯村 2012. 6. 19. 05:09

 

          

 

                              

 

천진궁 (天眞宮.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경남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경내에 있는 건물로 원래 이곳은 요선관이 있던 자리이다. 효종 3년(1652)에 지었으며 공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조 15년(1739)에 불탄 것을 영조 25년(1749)에 다시 지었으며, 헌종 10년(1844)에 크게 수리하였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 및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재위 918∼943)의 위패를 모시면서 대덕전이라 하였으나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목조로 된 기와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기단은 낮은 2기단으로 앞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은 벽으로 되어있다. 최근에 원래의 문틀에 2중의 문을 덧대어 달았는데, 기법이 미숙하여 기둥의 높이를 전통적 비례에 비해 높게 보이도록 만들었다.(문화재청 자료)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경내의 북쪽에 있는 건물이다. 이 자리는 본래 현종 6년(1655년)에 부사(府使) 홍성구(洪聖龜)가 창건한 요선관(邀仙官)이었는데 이 건물은 본래 전패(殿牌)를 봉안한 공진관(拱辰館)의 부속 건물로서 경종 2년(1722년)경부터 공진관(拱辰館)을 대신하여 전패(殿牌)를 보관했던 객사(客舍)로 추정된다. 그 후 영조 15년(1739년)에 불타버린 것을 영조 25년(1749년)에 부사 신준(申晙)이 재건하였으며, 헌종 10년(1844년)에 부사 이인재(李寅在)가 다시 크게 보수하였는데, 이 때 일주삼문(一柱三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910년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전패(殿牌)가 땅에 묻히고 객사의 기능도 해제된 채 일본(日本) 헌병(憲兵)들에 의해서 옥사(獄舍)로 강점(强占) 당하기도 했다. 1952년부터 단군봉안회(檀君奉安會)가 발족되어 단군(檀君) 및 삼국의 시조왕(始祖王), 고려 태조의 위패(位牌)를 모시면서 대덕전(大德殿)이라 이름을 짓고 해마다 음력(陰曆) 3월 15일을 어천대제(御天大祭)로, 10월 3일을 개천대제(開天大祭)로 하여 춘추(春秋)로 향사(享祀)를 올려오다가, 1957년 본전(本殿)과 일주삼문(一柱三門)을 다시 수리하여 단청(丹靑)을 하고 종전 "대덕전(大德殿)"을 "천진궁(天眞宮)"으로 정문을 만덕문(萬德門)이라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천진궁(天眞宮)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출목(二出目)의 주심포식(柱心包式)으로 단층 팔작(八作)의 겹처마 집이다. 기단(基壇)은 두단으로 되어 있는데, 계단 없이 출입되는 낮은 단이다. 전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은 심벽(心壁)으로 둘러 막았다. 전면의 중앙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양쪽 칸은 판벽(板璧) 사이에 두 여닫이문만을 달았다.(밀양시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