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강원도

승일교

노촌魯村 2012. 6. 30. 12:31

 

                                    

 

승일교의 난간 끝의 교주(橋柱)에 쓰인 글씨(단기 4291년 12월 3일) : 단기4291년은 서기1958년임)

 

 

 

昇日橋 ?. 承日橋 ?. 승일교 ?

 

 

           

 

 

 

 

 

昇日橋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출판금지 모면

 

                                                                                                                     1995-03-24

 

(서울=聯合) 서울지법 민사 합의50부(재판장 權光重부장판사)는 25일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지역 부대장이었던 故朴昇日대령의 유족 朴송선씨(서울 노원구 중계동)가 출판사인 창비社를 상대로 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 출판 판매 등 금지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출판사측이 문제의 서적 9版부터 내용을 수정, 출판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출판사측이 고증을 통해 `지난 58년 12월 당시 5군단이 경기도 포천군 철원읍 지포리에 세운 승일교는 故朴昇日대령을 추모하여 昇日橋라고 명명했다'며 朴씨측의 주장대로 책 내용을 수정, 출판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될 뿐 만 아니라 지난 2월 13일 출판사측이 일선 서점과 유통업자에게 공문을 발송, 내용이 잘못 수록된 1∼8版까지의 책을 수거하고 있으므로 朴씨측의 출판금지 신청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朴송선씨등 朴대령의 유족들은 지난 1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에서 `승일교가 6.25 당시 철원지역 관할 부대장이었던 朴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58년 당시 5군단장이었던 李성가 장군이 건설, 昇日橋라고 명명했는데도 承日橋가 맞는 명칭이라고 기술하고 있어 朴대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문화재청 자료에서 ...

철원 승일교(鐵原 承日橋)

(등록문화재 제26호.강원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725, 갈말읍 내대리 산61-1 외 )

ㅇ소련식 유럽공법의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아치교
ㅇ남북분단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고, 교량의 조형미가 돋보임.
ㅇ 1948년 8월부터 인공치하에서 철원 및 김화지역 주민들이 5일간 교대제로 노력공작대라는 명목아래 총동원되어 작업
ㅇ 6.25동란으로 중단될 때까지 다리의 북쪽 부분만 완성.
ㅇ 당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며 일제 시 구주공전 출신으로 진남포 제련소의 굴뚝을 설계했다는 김명여 교사가 설계하여 시공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음.
ㅇ 1954년도 수복이후 국군에 의해 임시 가교인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
ㅇ 임시 가설했던 목교는 철거되고 우리 정부에 의해 1958년 완성됨.

 

 

 

철원군 자료에서 ...

건축물 이력


소련식유럽공법의 철근콘크리트라멘조 아치교로서 교량의 조형미 가 돋보이는 교량높이 35m, 길이120m, 폭 8m 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 김명여 교사가 설계한 것으로 1948년에 착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건축물 연혁


새로 놓여진 철교로 인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이 다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이 시차를 두고 완성한 남북합작의 다리이다. 큰 아치위의 상판을 받치는 작은 아치의 모습이 서로 다른 것은 시공자가 달라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원래 이 다리가 놓여진 곳은 철원읍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의 남부와 북부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얕은 여울에 돌다리를 놓아 사용하고, 수위가 높아지면 목선을 이용하던 곳에 1948년 8월 이도로를 군사적 연결로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북한정권하에서 교량설치공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철원 및 김화 지역주민들이 5일간 교대제의 노력공작대 라는 이름으로 총동원되어 한국전쟁 초까지 다리 기초 공사와 2개의 교각을 세워 북쪽 부분은 거의 완성되고 남쪽부분은 남게 되었다. 그 이후 이지역이 수복되어 국군에 의해 임시목조 가교가 놓여졌다가 1958년 12월 미완성된 부분이 마감되어 다리 가 완공되었다. 다리이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원래'한탄교'라는 이름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지도상에도 '한탄교'라 명기되어있다. 북한이 절반가량 완성했다가 남측이 나머지부분을 완공해 이승만대통령의'승 '자와 김일성의 '일 '자를 합해 이름을 붙였다한다.

 

    

  

 

 

 

 

 

 

 

 

 

승일교 옆의 한탄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