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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단종태실지(端宗胎室地)

노촌魯村 2013. 6. 1. 09:45

 

 

단종태실지(端宗胎室地. 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산438)  

단종태실지는 세종대왕이 임금자리에 오른지 23년(1441)에 그의 애손(愛孫)인 단종이 태어나자 자신의 태실 앞산에 태실을 안치(安置)토록 어명을 내려 곧 그해에 조영(造營)하였다. 임진란 때 왜적이 몰려와 규모가 큰 세종대왕의 태실은 거의 파괴되었으나, 규모가 작은 단종 태실은 적의 눈길을 끌지 못하여 다행히도 화를 면했다. 영조 10년(1734) 세종대왕의 태실비를 세울 때 단종의 태실비도 이때 함께 세웠다.

단종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서 12살의 어린 나이로 부왕(父王)인 문종(文宗)의 뒤를 이어 1452년에 제6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보필하던 중신(重臣)들이 그의 숙부(叔父)인 수양대군(首陽大君:뒤에 세조)에게 참살되자 1455년 재위 3년 만에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봉해져, 강원도 영월(寧越) 땅에 유배되었다가 그의 숙부인 세조 3년(1457)에 죽음을 당한,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슬픈 운명의 임금이었다.

현재 태실지 산비탈에 석물들이 흩어져 있고 본래의 태실지에는 민묘가 있으며 1972년 2월 12일 세종대왕태실지와 함께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며 역시 수리에 관한 내용은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수개의궤에 기록되어 있고 2000년 사천문화원에서 번역본을 발간한 바 있다.(사천시청 자료)  

 

 

 

 

 

 

 

단종의 태실지 위에 무덤은 최연국(崔演國)의 무덤 

최연국(崔演國, 일본식 이름: 朝日昇, 1886 - 1951) : 일제강점기의 관료 겸 기업인, 교육인으로, 호는 남주(南洲)

경상남도 사천 출생이다. 사천의 유력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1903년 궁내부의 주사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정재계의 요직을 거쳤다.

명달보통학교(현 사천초등학교) 교장(1905), 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 발기인(1920)을 지내는 등 지역의 교육계에서도 활동했다. 지역 사회에서 설립을 추진한 사립 일신고등보통학교는 설립되지 못했고, 해당 부지에 공립인 진주고등보통학교가 세워졌다.

1933년부터 11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1944년 국민총력동맹 등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벌였다.

광복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조사를 받았으나,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풀려났다.

그는 일제가 훼손한 사천의 단종태실지(단종의 태를 묻은 곳)를 불하받았고, 후손들이 여기에 최연국의 묘를 썼다.(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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