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봉업사지(安城奉業寺址.경기도 기념물 제189호.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5외 41필지)
이 사지는 죽산면에서 일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넓은 뜰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업사지의 사명(寺名)이
확인된 것은 1966년 경지정리작업 중 출토된 향완과 반자에 새겨진 명문 때문이다.향완과 반자의 발견으로 고려사에 나오는 죽주의 봉업사가 현재의
봉업사지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이 1363년(공민왕 12년) 죽주에 이르러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영을
알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봉업사는 절 이름 그대로 나라를 창업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호국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시기로 올라가며 창건 당시의 사명은 화차사(華次寺)였음이 1997년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명문기와를 통해 확인되었다.
봉업사는 진전사원으로 고려시대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사찰이었다.
현재
봉업사지에 남아있는 유물로는 죽산리 오층석탑(보물 435호), 죽산리 당간지주(유형문화재 89호)등이 있으며, 칠장사로 옮겨진 안성 봉업사지
석불입상 등이 있다.
봉업사는 경기도 박물관에 의해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진행된 바 있다.
봉업사에 대한 1, 2차
발굴은 1997년과 2000년에 실시되었으며, 당시 峻豊銘 기와 등 명문기와와 막새, 청자, 중국 자기들이 다량으로 출토된 바 있다. (출처:문화재청)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安城 奉業寺址 五層石塔.보물 제435호.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奉業寺)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하였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작은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만들어 놓았으나 모양만 새기는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지붕돌은 얇고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었으며
끝에서의 치켜올림도 미미하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고려시대의 큰 사찰이었던 봉업사(奉業寺)가 있었던 이곳은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으나 명문이 있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그 연혁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높이가 6m로 여러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기단을 두고 위에 5층 탑신을 올렸다.
지상에는 수매(數枚) 판석으로 구성된 지대석이 놓이고 위의 중석은 각 면 일석식으로 되었다. 각 면에는 우주형(隅株刑)이 매우 희미하게 표현되었을 뿐 평평한 느낌을 준다. 갑석은 사매(四枚)로 두꺼우며 둔중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밑의 부연(副椽)이 없고 윗면의 몰딩도 형식적이다. 탑신부는 초층 옥신만이 사매구성이고 초층 옥신은 기단중석보다 높아졌고 높이에 비하면 폭이 매우 좁은 우주형이 얕게 모각되었고 남면 중앙에는 소감실(小龕室)이 개설되었으나 형식에 흐르고 말았다.
이층 이상의 옥신은 초층에 비해 급격히 줄었고, 상층으로 갈수록 심한 체감(遞減)비례를 보이고 있다. 각 옥신에는 자체의 목에 비하여 좁은 우주형이 있을 뿐이다. 옥개는 평박(平博)한 편으로 받침은 각층 다섯 단이고 얇은 추녀가 전각에 이르기까지 수평을 이루었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지었고 전각의 반곡은 경미하여 옥정에 옥신을 받기 위한 괴임이 각출되었다.
상륜부는 전혀 남은 것이 없다. 이 석탑은 기단부 구성에서 둔중함을 보겠고 기단이나 옥신의 우부가 형식적으로 흘렀으며 탑신부의 체감비율도 건실한 편이 못된다. 그러나 석제 경구에서 규율성을 잃지 않았고 거대한 작풍에서 주목할 만하다. 안성시내에는 많은 석탑이 전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오층 석탑이 가장 우수하다.(안성시청 자료)
안성죽산리당간지주(安城竹山里幢竿支株.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728)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걸게 되는데, 이 깃발을 꽂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일컫는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대사찰이었던 봉업사터에 안성죽산리오층석탑(보물 제435호)과 약 30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원래 이곳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복원하였는데, 남쪽 돌기둥은 윗부분의 4분의 1정도가 이미 깨진 상태이다. 돌기둥은 표면이 거칠고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꼭대기의 바깥쪽 모서리를 둥글려 완만하게 다듬었다.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파놓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로, 안성죽산리오층석탑과 같은 시대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출처:문화재청)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安城 奉業寺址 石造如來立像.보물 제983호.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칠장사 (칠장리))
원래 봉업사지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기고 그 뒤 다시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七長寺)로 옮겼다.
불상과 광배(光背)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불상 높이는 1.57m이고 총 높이는 1.98m이다. 눈·코·입은 심하게 닳았고,
옷은 양 어깨를 감싸 입고 있다. 옷주름은 여러 겹의 둥근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치마가 양다리 사이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표현에 있어서는 손이 다소 큰 편이기는 하나 머리, 어깨 너비 등의 신체비례가 비교적 좋다. 불상의 뒷면에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가 있는데 주위에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당당한 어깨, 발달된 신체표현, U자형의
옷주름, 그 밖의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방 불상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 : 문화재청
봉업사명 청동북 (奉業寺銘 靑銅金鼓.보물 제576호.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박물관)
봉업사명 청동북(奉業寺銘 靑銅金鼓)은 반자란 절에서 사용하는 금속으로 만든 일종의 타악기이다. 금고 또는 금구라고도 하는데,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사용한 도구이다.
이 반자는 지름 61㎝, 너비 12.9㎝로 비교적 큰 반자이고, 표면의 장식
문양도 특이하다. 3줄의 돌출선을 돌려 3개의 원으로 나누었다. 중심원에 9개의 둥글게 돌출된 연꽃 열매가 있고, 주변에 8장의 연꽃잎이 있다.
가운데 원에는 24장의 연꽃잎을 새겼고, 바깥쪽 원에는 네 곳에 구름 무늬가 있으며, 가장 자리에 꽃봉오리 무늬가 새겨져있다.
옆면에는 중간에 돌출선을 돌리고 그 선 위에 3개의 고리를 달아 매달 수 있게 하였고, 고려 고종 4년(1217)에 만들어진 반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씨가 있다.
무늬의 선은 약하게 새겨져 있으나, 배치에 있어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반자이다.(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 : 문화재청
봉업사명청동향로(奉業寺銘靑銅香爐.보물 제1414호.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호암미술관 (가실리) )
경기도 안성의 고려시대 절터인 봉업사지 출토로 전해지는 대형의 이 향로는 몸체[노신(爐身)]와 덮개[개부(蓋部)], 그리고 기대(器臺) 부분에
삼족(三足)의 받침을 지닌 특수한 형태이다. 즉 몸체 구연부의 넓은 전을 지니지 않은 것이 고려시대 일반적인 향완의 모습과는 다르다.
향로의 중간 부분은 고려시대의 향완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며 보주(寶珠)가 달린 뚜껑이나 세발이 달린 원형의 대좌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감과 장중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구성한다. 덮개부의 불꽃형상 보주는 사리기에 나타나는 화염보주(火焰寶珠) 형태인데 도금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조형미가 우수하다.
덮개부에는 ‘봉업사삼중대사원준(奉業寺三重大師元준)’이란 점열로 새긴 명문이 있는데 이는 봉업사의
원준대사가 직접 만들었다기보다는 원준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할 것이며, 받침부분의 ‘중념육근(중卄六斤)’의 명문은 향로주조에 구리 26근이
소요되었음을 알게 한다. 명문에 의해 고려 초의 사찰이었던 봉업사에서 제작한 13세기 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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