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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주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 可興洞 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

노촌魯村 2014. 6. 17. 19:41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 可興洞 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 보물 제221호.경북 영주시 가흥1동 264-2번지 

영주시 가흥동에서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암반의 최상부에 있는 마애삼존상이다. 측면에서 보면 삼존이 새겨진 돌이 암반과는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존 주변으로는 크기 20㎝내외의 사각형 흠이 있고, 삼존상 앞으로도 기둥자리로 보이는 흔적이 있어 이 마애상을 주존으로 한 시설물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은 높은 도들새김의 거대한 본존과 본존 쪽으로 약간 몸을 틀어 선 협시상으로 구성되었다. 본존상은 고식의 앙련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은 좌상이고 좌우에 역시 연화좌를 대좌로 서 있는 보살상이다.

본존은 소발이며 육계가 뚜렷하고 두터운 통견의에 시무외여원인을 하였다. 방형에 가까운 살이 오른 상호가 지역적인 양식을 보이고 양 협시도 동일한 경향을 보여준다. 광배는 상단이 뾰죽한 보주형으로 중앙에 연화문을 두고 주위로는 2조선과 4엽을 간단하게 돌린 화문을 넣었다. 대좌는 무릎에 잇달아 복변의 연화문 8엽을 앙련으로 새겼고 환조에 가깝게 두터운 조각을 보여준다.

양쪽의 보살입상도 본존과 마찬가지로 높은 도들새김이며 향좌측의 보살은 왼팔을 어깨 위까지 들고 바른손은 배 앞으로 두었다. 향우측의 보살은 두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고 보관에는 보병이 확인된다.

협시상도 눈부위의 파손이 심하다. 협시상의 팔목을 걸쳐내린 천의 자락이나 두터우면서도 유연하게 처리된 옷주름선, 중량감 있는 신체 표현 등이 본존상과 마찬가지로 우수한 조각술을 보이고 있다. 영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통일신라 초기의 불교조각양식을 대표하는 상이라 할 수 있다.(출처:영주시청)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추가지정 및 지정명칭 변경 예고 사유>
- 추가지정대상 :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 추가지정수량 : 1구(기 지정대상 3구)
- 규격 : 상높이 81㎝, 어깨 폭 38㎝, 무릎 폭 69㎝, 슬고 26㎝
- 시대 : 650년경
마애여래좌상은 2006년 6월 28일 집중호우로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의 전방 좌측의 암반이 붕괴되면서 새롭게 발견된 불상이다.
발견된 마애여래좌상은 연화문이 새겨진 고식(古式)의 보주형 두광을 갖추었다. 머리는 소발로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으며 턱 선을 둥글린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여 통통한 느낌을 준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에 비스듬히 표현된 승각기는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수인은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인을 취한 상으로는 상당히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이 마애여래상은 인근 지역에 유존하고 있는 삼국 말에서 통일신라 초의 마애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며, 특히 얼굴의 표현, 법의의 조각솜씨나 앙련의 연화대좌 형태에서 이미 보물로 지정된 바로 옆의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거의 같은 시기(650년경)에 제작된 상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이 시기 제작된 신라 불상 중에서 경주를 제외하고 지방에서 제작된 예는 영주와 봉화 지역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흥동의 마애불상들은 도상이나 이 지역 불교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상이라 할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 1구에 대한 추가지정에 따라, 보물 제221호의 지정명칭을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에서 “영주가흥동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可興洞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으로 변경하고자 한다.(출처:문화재청  200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