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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

노촌魯村 2014. 7. 1. 18:42

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중요민속문화재  제5호.강원 강릉시 운정길 63 (운정동))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선교리)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붙였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순조 15년(1815)에 이후(李厚)가 세웠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집 밖의 활래정과 함께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문화재청)

선교장은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옥(主屋)인 안채와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하여 동별당 등 민가의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고 행랑채의 바깥마당에는 넓은 방지와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측면 정원에 만들어 놓은 연지에 세운 정자로 1816년(순조 16) 이근우가 세웠다고 한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집자한 것으로, ‘맑은 물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내부는 장지문을 지르면 두개가 되는 온돌방이 그 한쪽이고 다른 한쪽은 대청이다. 외부는 벽면의 전부가 2-4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는 접객용 다실이 있다.  

 

 

 

 

 

 

 

 

 

동별당(東別堂)

동별당은 안채와 연결된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이다. 1920년에 지은 ㄱ자형으로 대청을 사이로 동쪽에 2개 서쪽에 한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와 뒷면과 동면에는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이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 15년(1815)에 건립되었다. 열화의 당호(堂號)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단층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4칸, 측면2칸의 ㄱ자형 건물로 동편 1칸은 중층을 두어 누각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정면 2칸과 서측면에 걸쳐 툇마루와 난간을 돌렸다. 건물의 내부는 마루를 깔았으며 대청과 누마루 사이에 ㄴ자형으로 된 온돌방을 만들고 그 안에는 장지문을 두어 방을 셋으로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해동거사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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