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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江陵 鏡浦臺와 鏡浦湖)

노촌魯村 2014. 6. 29. 22:53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강릉시 사진제공)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江陵 鏡浦臺와 鏡浦湖.명승  제108호. 강원도 강릉시 저동 94)

강릉 경포대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고려말 충숙왕 13년인 1326년 지중추부사 박숙에 의해 창건된 누정건물로 안축의 「鏡浦臺新亭記」記文에 “옛날 영랑선인이 놀던 곳이며 정자가 없어 비비람이 치는 날 놀러왔던 사람들이 곤욕스럽게 여겨 작은 정자를 지었다”라고 하여 창건목적을 밝히고 있어 역사성이 높다.
또한 창건 당시 이전시대의 주춧돌과 장대석이 발견되어 훨씬 이전시대부터 이곳에 정자형태의 건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강릉지역 누정 기록으로 신라 성덕왕대 순정공(純貞公)과 관련이 있는 임해정과 술랑선도(述朗仙徒)와 관련이 있는 한송정을 통하여 현존하는 경포대와 더불어 강릉 지역의 누정문화의 시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경포대(鏡浦臺)는 지형∙지질적 가치가 뛰어난 자연석호인 경포호와 함께 동해안의 빼어난 절승지로 예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명승지로서 명사들의 수많은 시∙서∙화가 있어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높다.
경포대와 경포호의 자연풍광을 관동팔경에 비유한 경포팔경과 호해정을 중심으로 한 팔경, 김극기의 강릉팔영 등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조망하며, 심성을 수양하는 곳일 뿐 아니라 풍부한 문학적 소재성 등 문화적, 경관적 요소가 결합된 누정으로 장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영조 22년(1746년) 김상성(金尙星, 1703~1755)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화원들에게 강원도 절경을 그리게 한 후 친한 사람들에게 시를 지어 완성한 작품이 관동십경(關東十景)인데 그 중의 경포대 그림은 경포대와 경호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부감법으로 그린 것으로, 경호는 경포대를 경계로 하여 내호와 외호로 구분하고 있으며, 호수에는 낚시질을 하는 늙은 어부와 갈매기의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호수와 바다가 경계되는 곳에는 백사장과 함께 현재의 죽도봉이 그려져 있고, 초당과 경포대 뒤쪽에는 소나무 사이로 꽃들이 만발하여 봄날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으며, 멀리 강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 바다에는 아침해가 떠오르는 일출 모습과 함께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돛단배를 그리고 있어 경포호의 옛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경포대를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했으며, 경포대에 저녁이 되어 달빛이 쏟아지면 하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 등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제일의 달맞이 명소이다.
경포대 정자 내에는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어제시,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시문현판은 인문학적 가치가 높다.
강릉 경포대는 고려말 1326년 지추부학사 박숙이 방해정 뒷산의 인월사터에 세웠던 것을 1508년에 강릉부사 한급이 현재 자리로 옮겼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약 680여년의 역사성을 지닌 누정건축물이며, 경포호와 더불어 탁월한 역사문화적 경관성을 지닌 곳이다.
강릉 경포대는 16세기 이후 지방 재지사족(在地士族)이 주체가 되는 별당식 정자 형태로 전환되는 누정건축 양상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는 중간적 의미를 갖는 정자로서 건축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동인시화(東人詩話)》설화 홍장(紅粧) 고사는 경포대에서의 홍장과 강원 감찰사 박신과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구전문학의 가치가 높음 곳이다(출처:문화재청)

경포호는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수심이 깊지 않아 사람이 빠져도 상하지 않는, 마치 선비와 같은 덕을 가진 호수 같다고 해서 군자호, 어진개라고도 한다.

 

 

 

고기 반. 물 반인 경포호(고추장 풀면 바로 매운 탕)

 

강릉 경포대(江陵 鏡浦臺.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강원 강릉시 경포로 365 (저동))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태조(재위 1392∼1398)와 세조(재위 1455∼1468)는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앞면 5칸·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는 입체적 평면을 하고 있다. 이름인 ‘경포대’ 전자체 현판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 현판은 이익회의 글씨이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글이 걸려있다. ‘제일강산’은 주지번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일’과 ‘강산’의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볼 때 ‘강산’은 뒷날 다른 사람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들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肅宗御製(숙종어제) 詩(시)

汀蘭岸芷繞西東 (정란안지요서동)

난초 지초 동과 서로 가지런히 감아돌고

十里煙霞映水中 (십리연하영수중)

십리 호수 물안개는 물속에도 비추이네

朝噎夕陰千萬像 (조일석음척만상)

아침 안개 저녁 노을 천만가지 형상인데

臨風把酒興無窮 (임풍파주흥무궁)

바람결에 잔을 드니 흥겨움이 무궁하네

 

숙종이 친히 경포대에 행차하여 지은 것은 아니고

김홍도에게 경포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오게 하여

그림을 보고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숙종어제 시의 번역은 前 오죽헌박물관장 정향교님의

번역본 <增修 臨瀛誌(증수 임영지)>에 실린 것입니다